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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것이프로젝트 Jun 20. 2019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걷는 마음으로

[월간 이것이 6월호] 걷는 마음

오늘의 추천곡: If you rescue me - Jean-Michel Bernard


좋아하는 문장과 향과 새벽을 담으려 노력했다


정직하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잘할 수 있는 것들 


추상적인 것들을 좋아합니다.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문장을 좋아하고, 인터뷰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합니다. 좋아한다고 해서 딱히 잘하게 되는 것인지, 잘 알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단어 외우기를 좋아한다거나, 달리기를 좋아했다면, 그것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것들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일부로 자리했다면, 어느 정도는 잘할 수 있게 되었거나, 적어도 할 수 있게 되었을 텐데요. 지금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좋아한다 해서, 자주 한다고 해서 딱히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겠지만, 그게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좋아해 왔는데, 아직도 누군가에게 ‘나 이거 좋아해! 이거 잘해! 내가 한 거 볼래?’라고 말할 자신이 없을 때면,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래오래 걷고 싶어졌던 푸르고 파랗던 공간


그래서 이거 말고, 정직하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잘할 수 있는 것을 배워 보는 게 어떨까! 스스로 나아지는 내 자신을 매일매일 확인할 수 있다면, 그 작은 성취감이 좀 더 평탄하고 기복 없는 삶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동안 요가를 배우고 싶다, 매일 꾸준히 몇 KM씩 걷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도 떠들고 다녔는데요. 평탄하고 기복 없는 삶을 살고 싶기는 하지만, 아직 그 일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렇게 커지지 않은 탓인지 아직까지 말뿐인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일들에 정직하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적어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날이 성장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이전보다 좀 더 평탄하고 기복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요가’ 혹은 ‘달리기’ 혹은 ‘우쿨렐레 배우기’ 혹은 ‘스페인어 단어 외우기’처럼 걷는 마음으로, 기복 없는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가득 했는데요. 사실 이 일들은 아직까지 전혀 실천한 바가 없기 때문에, 글로 쓸 내용도 없어 유감입니다. 대신, 조금은 서운하고 가끔은 밉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보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옮길 글들은,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걷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어 쓴 글들입니다. 자기 전에 15분이면 되는데, 그것도 매일 하는 것은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공유하면 매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어서 자기 전에 마음대로 쓴 글들을 공유합니다.




2019.04.08  나의 어린 시절에게


오래 전부터 이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한 아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행사 때문인지 나머지는 전부 똑같이 아래 위로 새빨간 옷을 입고 있었는데 혼자 옅은 분홍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중략) 떨어진 꽃처럼 오도카니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무엇인가라도 해 주고 싶었다. 잘 적응할 줄 모르는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누구라도, 혹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그런 상황에 처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 계피 동요집 ‘빛과 바람의 유영’ 中

https://www.genie.co.kr/detail/albumInfo?axnm=81182285


잊히지 않는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있다. 리코더 연습을 해야 해서 친구를 부르러 놀이터로 나갔던 날, 그 친구가 내가 모르는 다른 언니였는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친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 함께 놀고 있는 것을 봤다. 그 장면을 보고 아무 말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순간이 떠올랐다. 왜 혼자 왔냐고 묻는 엄마에게 별 대답을 못하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잘 웃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잘 대화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때 그 모습이 완전히 지워진 사람이 된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멀리 있는 사람을 애써 불러 인사하지 않고, 어색한 사이는 모른 척 다른 곳을 보고 지나갈 때도 많다. 지워지지 않은 아이를 품고 크고 있다. 굳이 그 아이를 지우고 싶지는 않다. 품고 크고 있지만, 지금의 모습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다고, 괜찮다고 그때의 아이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내향적이고 빛과 바람의 유영 속을 사랑했던 어린 계피도, 여전히 쑥스럼 많고 내향적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내어 노래하는 뮤지션이 되었듯이. 내 안의 어린 아이를 미워하지 말자, 우리 그렇게 같이 성장할 수 있으니까.



2019.04.16  "당신은 그런 일을 당하지 마세요”


어지간히 고통스러워야 너도 한 번 겪어보라고 할 텐데, 인간으로서 그 말만은 차마 못 하겠는 거예요. 그 분들은 ‘당신도 당해 봐라’가 아니라 ‘당신은 그런 일을 당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요. 저는 이것보다 숭고한 마음은 없다고 생각해요. 유족들의 이야기 중 ‘재난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저는 세상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일간 이슬아/ 인터뷰] 2019.04.09 한 번이라는 감수성 - 정혜윤 PD 中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 게, 어떤 방식으로 잊지 않는 게, 어떤 방식으로 그 하루를 보내는 게 옳은 방식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날이면 떠오르는 노래를 꺼내 듣고, 매 해 했던 다짐을 잊지 않는 것.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작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우리는 어떻게든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그 일상이 이전과 마냥 같지 않기를 바란다. 그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니까. ‘치유’라는 말을 꺼내기에는 아직 너무도 이르고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용기를 내 공연을 하고 용기를 내 제주도로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일상이 더 이상 얼룩지지 않게, 조금은 더 웃는 일이 많아지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고 적어도 그 마음을 잃지 않겠다 생각했다. 우리는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2019.04.22. 아무리 애쓴다 해도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최초의 순간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 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신철규, <유빙> 中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2/31/2010123100901.html


아무리 애써도 최초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깨져 버린 도자기를 이어붙여 “안 예쁘잖아”라고 말하던 교환의 연애 다큐가 생각나는 시. 

그 깨져버린 도자기 씬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는 너무나 명료하게 그 장면에서 깨진 관계를 이어붙이려 애쓴 우리의 모습을 목격해서일 것이다. 안 예쁠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미련이 남아 이어붙이고 싶었는데, 그 장면에서 너무나 명료하게 예쁘지 않은 도자기를 확인했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나 명료하고 단호해서 좋은 것들이 있다. 이미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혹시나’를 꿈꾸는 순간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시를 읽고 이런 글을 쓰면서 듣는 윤현상의 목소리 너무 좋다.



- 이것이프로젝트, 밍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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