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4세 이하 아동들을 상습 학대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은평구 갈현동의 A어린이집 교사 2명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를 접수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보호 전문기관 협조를 받아 구체적인 혐의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경찰과 피해아동 부모 등에 따르면 교사 2명은 아무런 이유 없이 아동들을 책상에 밀치거나 밥을 잘 먹지 않는다며 턱을 때리는 등 아동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아이들이 화장실을 오래 사용했단 이유로 바닥에 넘어뜨리기도 했다는 게 피해 아동 부모들의 주장이다.'
최근 온라인을 장식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관련 뉴스의 일부이다. 2014년 제정된 후 몇 차례 개정을 통하여 아동 학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 학대 범죄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 자크 루소와 에밀[Emile]
장 자크 루소는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저서 '에밀'을 통해 근대 교육학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위인이다. 특히, '에밀'은 아동교육을 전공하는 전공자들에게 아직도 필독 도서로 강조되고 있으며 자연주의 교육 연구에 있어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에밀[Emile]
에밀 초판본(1762) / 에밀( 2015, 돋을새김 출판사)
교육학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그에게 안긴 저서 '에밀'은 파리에서 출간되자마자 소르본 대학과 고등법원에 의해 금서 처분이 내려졌고, 루소 자신에게도 체포 영장이 발부될 만큼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교육 혁명서였다.
'구원받기 위해서 신을 믿어야 한다는 교리는 인간의 이성에 치명타를 가하는 헛된 가르침의 근본이다. 말 그대로, 영원히 구원받는 길이 있다면 성실하게 그 길을 가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방식이 몇몇 구절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라면, 천국엔 아이들뿐만 아니라 찌르레기나 까치까지도 우글거려야 마땅할 것이다.'
[에밀] 4부 청년기에 실린 그의 글이다. 종교에 대한 그의 계몽주의적 관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이러한 이유로 [에밀]은 소르본 대학 신학부의 고발로 금서 처분을 받았고, 루소 자신도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와 영국을 전전하며 죽는 날까지 숨어 지내야 했다.
루소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마음속에 지닌 고유의 성향들이 사람이나 사물의 영향으로 변질되기 이전 상태를 자연 상태로 간주하고, 각 개인의 자연적인 성향을 최대한 살리는 교육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자연 교육과 가정교육을 강조하였으며 그러한 교육을 통해 자유로운 근대 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에밀=루소의 가상 육아 일기'
루소는 그의 교육 철학을 효과적으로 설파하기 위해 가상의 남자아이 '에밀'을 설정하고, 그 자신에게는 에밀을 양육하는 선생의 역할을 부여한다. 가상의 인물 '에밀'을 유아기에서 성년기까지 교육시키는 루소 자신의 교육 철학을 담고 있는 책이 곧 '에밀'이다. 즉, '에밀'은 루소가 기록한 '가상의 육아 일기'라고 보면 적당하다.
[에밀]은 모두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은 유아기의 교육에 관한 내용이고, 제2편은 유년기, 제3편은 소년기, 제4편은 청년기 그리고 제5편은 성장한 에밀의 결혼 상대자인 가상의 여성 소피를 통해 여성 교육에 대한 내용을 각각 담고 있다.
1762년 어느 날, 장 자크 루소에게 아동학대의 근원을 묻다.
기자: 아동 학대의 근본 원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루소: 어머니라면 으레 자신의 젖을 물려 아이를 키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이 준 직무를 유기한 채 유모에게 아이를 맡깁니다. 고용된 유모가 친어머니처럼 아이를 돌볼 리는 만무하지요. 유모는 자신의 수고를 덜기 위해 아이의 자유를 구속하는 편법을 동원하고 이로 인해 아이의 심신은 피폐해져만 갑니다. 그런데도 이 땅의 상류층 어머니들은 도시의 환락에 젖어 흐느적거리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녀들은 자신의 자식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유모로부터 어떤 학대를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어머니라는 신분에 부담을 느끼는지, 한발 더 나아가 아이를 낳는 일마저 포기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요. <에밀, 돋음새김 출판사. 20쪽>
기자: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비책은 무엇인가요?
루소: 우선 어머니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첫째가는 의무입니다. 어머니가 그 의무를 소홀히 하면 가정은 위축되고 파괴됩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보고도 남편은 별 감동을 느끼지 못하며 아내에 대한 마음도 시큰둥하게 되어 온기 없는 가정이 되지요. 혈연의 정을 다질 기회는 사라지고 각자는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에밀, 돋음새김 출판사. 22쪽>
대개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의무는 종종 소홀히 취급되지요. 아버지가 아이를 잉태케 한 것, 즉 자신이 속한 종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아버지의 세 가지 의무 가운데 하나를 이행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사회에 대해서는 사회적 인간을, 국가에 대해서는 시민을 키워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범죄이며 아버지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며, 이는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중간 생략> 사업상 바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자신의 의무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오, 이 얼마나 천박한 마음인가요. 돈으로 아버지를 사줄 수 있다고 믿다니. 그런 인간들은 자식에게 교사를 사준 것이 아니라 하인을 사준 것입니다. 그 하인은 그의 자식을 또 하나의 하인으로 만들 것입니다. <에밀, 돋음새김 출판사. 26~27쪽>
에필로그 <이 글과 루소에 대한 이해와 오해>
1. 루소의 삶은 그의 교육철학과 닮지 않았다. 인간과 어린이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그의 책 '에밀'을 떠올리면 루소 또한 훌륭한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실제는 이와 정 반대이다. 루소는 그의 평생의 연인 테레즈 르바쇠르와의 사이에 얻은 다섯 아이를 고아원에 버렸다. 아이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은 채, 옷에 숫자를 적은 카드를 넣은 후 산파에게 고아원에 버리도록 지시했다고 전한다.
또한 루소는 온화한 미소로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았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던진 공이 그의 다리에 맞자 루소는 불같이 화를 내고는 지팡이를 들고 아이를 쫓아갔다고 한다. 이상과 현실의 완벽한 분리다.
루소는 가상의 아바타 '에밀'을 말과 글로만 훌륭하게 키웠다. 실존하는 자신의 자녀에 대하들은 모두 고아원에 버리고서. 아이를 방치하고 온라인 세상에 몰두하는 오늘날의 몇몇 부모들과 놀랍도록 닮아서 섬뜩하다.
2. 이 글이 아동학대의 근원을 어머니에게서 찾는다는 오해는 부디 없기를 바란다. 당시 프랑스 상류 사회는 모유 수유조차 유모에게 맡겼고, 루소는 양육 과정에서의 그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했을 뿐이다. 오늘날의 육아 시스템은 과거와 다르다. 다만, 보편적 육아의 책임이 개인에서 사회로 빠르게 옮겨가는 과정이 루소가 살던 당시 프랑스 상류 사회와 닮았고, 유모에 의한 학대를 유추하는 루소의 견해를 잠시 빌리고자 했을 뿐이다.
3. 마지막으로 육아하기 좋은 사회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밝히며 글을 맺고자 한다. 최소한 만 2세까지의 유아들은 어머니나 아버지의 품속에서 양육되도록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 영유아 어린이집을 늘릴 일이 아니다. 이 땅의 모든 2세 미만 아이들이 부모의 품속에서 단 2년 동안이라도 충분히 부모의 애정을 느끼며 성장하도록 사회가 책임지자. 생후 2년의 애정 나눔이 아이의 평생 성장을 좌우한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를 이제는 무시하지 말자. 루소가 말했듯이 그 또래 아이들에게 사랑을 심어 줄 이는 부모 외에 아무도 없음을 직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