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탈 때 널찍한 창문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보통 아주 쉽게 그럴 수 있다. 앉아 가는 걸 바라면 그러기 어려웠는데. 한참 벚꽃이 피기 전부터 만개할 때까지 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어두운 터널에서 열차가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풍경이 바뀐다. 산등성이 속 국도가 보이다가 한적한 시골 밭이 나온다. 캄캄한 굴을 지나 환한 바깥과 마주할 때면 꼭 애틋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느낌이 든다.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던 아이가 도시에 와서 산다는,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특히 좋아하는 구간이 있다. 산본에서 금정으로 갈 때 열차가 공원을 지나는데, 큰 나무들 위에서 헤엄치는 새가 된 기분이다.
금정 다음부터는 긴 터널 속을 달린다. 그때부터 책을 꺼낸다. 두 손으로 가벼운 책을 받치고 선다. 요즘 읽는 건 겨울날 뮌헨에서부터 파리까지 걸어간 어느 영화감독의 수필이다. 작가는 얼음 속을 걷고 난 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