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 안주와 극강 비율의 소맥
힙합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있다. 모두 다른 과에서 다른 성격으로 지내다 공연을 같이하며 친해진 경우다. 그것도 일 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공통점으로 힙합 음악을 즐겨 들었고 술을 좋아했다. 한 번은 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싶었다. 평소라면 동아리방에 자리를 깔았겠지만, 그날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났던지라 술집을 찾아야 했다. 시간은 오후 세 시, 혹은 네시쯤이었다. 회전 초밥집에서 서로 눈치를 보며 가격대가 다른 접시에 담긴 초밥을 먹은 직후였다. 가는 족족 술집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게 중국집이었다. 이 시간이라면 당연히 열었을 테고 술과 함께할 음식을 먹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했다. 들어서니 이미 짜장면에 소주를 곁들이며 반주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짬뽕 한 그릇과 탕수육을 시키니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안주가 되었다. 유산슬, 팔보채, 양장피처럼 비싼 메뉴는 아니었지만, 안주에서 응당히 느껴져야 할 맛이 모두 나는 음식들이었다. 짬뽕은 맵고 자극적인 국물이 있어 소주 안주로 제격이다. 거기 홍합이나 면이 들어가니 씹을 거리도 있고, 고기가 들어간 짬뽕이라면 기름 맛까지 느낄 수 있다. 튀긴 음식이 안주로 잘 맞는다면 탕수육도 딱이다. 그냥 먹으면 바삭하고 담백한 맛이지만 소스와 함께하면 달콤하고 상큼한 맛도 느낄 수 있다. 조금 딱딱한 탕수육이라도 안주로는 괜찮다. 실컷 씹고 오래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중국집에서 풍기는 특유의 기름 냄새는 왠지 술맛을 돋구아준다.
친구는 낯선 방법으로 소맥을 말아줬다. 맥주잔이 가득 차도록 소주를 따른 후 맥주는 잔에 ‘몇 방울’ 떨어뜨리는 식이었다. 소주의 투명한 색 위로 맥주의 노란색이 깔려 은은하게 번져 보였다. “그냥 소맥처럼 섞어 마시는 게 아니야. 이대로 원샷을 해야 한다고” 친구의 말은 두렵게도, 신박하게도 들렸다. 조금이라도 맥주가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각자 앞에 잔을 뒀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함께 이 소맥을 ‘원샷’했다. 한잔을 털어놓고 난 뒤에는 신기하게도 소주의 역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표면에 씌워진 맥주의 씁쓸함이 첫맛이었고 소주의 달짝찌근함이 끝 맛이었다. 대신 빠른 속도로 마셔야 중간층을 가득 채운 소주 맛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신기하다며 그렇게 몇 잔을 연속으로 마신 후에야 소주가 들어간 비율을 상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중국집에 들어선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술기운이 잔뜩 오른 서로와 마주했다. 이 술은 그야말로 호기롭고, 괴이한 청춘의 맛이었다.
요즘도 술 좋아하는 친구를 낮에 만날 일이 있으면 중국집에서 약속을 잡곤 한다. 지금에야 중식을 먹을 땐 고량주나 이과두주를 곁들이곤 하지만, 이때 함께한 술은 무엇보다 특별했다. 얼굴을 익히고서도 한참 후 서로를 찾아 어울렸던 우리에게 그 이후로의 술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맥을 제조해주던 친구는 그날이 지나고 먼 나라로 이민을 했다. 몇몇 친구들은 군대를 갔고 지금은 소식도 모른 채 산다. 한자리에 다시 모이는 날이 아득하게 느껴질 뿐이다.
좀 더 나이가 들면 각자 초밥 접시의 색을 신경 쓰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모두 같이 만나는 날엔 꼭 그렇게 식사를 하고, 해가 지기 전 중국집에 가고 싶다. 짬뽕에 탕수육이 아니라 좀 더 값이 나가는 중화요리를 먹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친구가 만들어준 극강 비율의 소맥은 다시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