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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모 Jul 21. 2020

낮의 술은 중국집에서

중식 안주와 극강 비율의 소맥


 힙합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있다. 모두 다른 과에서 다른 성격으로 지내다 공연을 같이하며 친해진 경우다. 그것도 일 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공통점으로 힙합 음악을 즐겨 들었고 술을 좋아했다. 한 번은 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싶었다. 평소라면 동아리방에 자리를 깔았겠지만, 그날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났던지라 술집을 찾아야 했다. 시간은 오후 세 시, 혹은 네시쯤이었다. 회전 초밥집에서 서로 눈치를 보며 가격대가 다른 접시에 담긴 초밥을 먹은 직후였다. 가는 족족 술집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게 중국집이었다. 이 시간이라면 당연히 열었을 테고 술과 함께할 음식을 먹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했다. 들어서니 이미 짜장면에 소주를 곁들이며 반주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짬뽕 한 그릇과 탕수육을 시키니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안주가 되었다. 유산슬, 팔보채, 양장피처럼 비싼 메뉴는 아니었지만, 안주에서 응당히 느껴져야 할 맛이 모두 나는 음식들이었다. 짬뽕은 맵고 자극적인 국물이 있어 소주 안주로 제격이다. 거기 홍합이나 면이 들어가니 씹을 거리도 있고, 고기가 들어간 짬뽕이라면 기름 맛까지 느낄 수 있다. 튀긴 음식이 안주로 잘 맞는다면 탕수육도 딱이다. 그냥 먹으면 바삭하고 담백한 맛이지만 소스와 함께하면 달콤하고 상큼한 맛도 느낄 수 있다. 조금 딱딱한 탕수육이라도 안주로는 괜찮다. 실컷 씹고 오래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중국집에서 풍기는 특유의 기름 냄새는 왠지 술맛을 돋구아준다.



 친구는 낯선 방법으로 소맥을 말아줬다. 맥주잔이 가득 차도록 소주를 따른 후 맥주는 잔에 ‘몇 방울’ 떨어뜨리는 식이었다. 소주의 투명한 색 위로 맥주의 노란색이 깔려 은은하게 번져 보였다. “그냥 소맥처럼 섞어 마시는 게 아니야. 이대로 원샷을 해야 한다고” 친구의 말은 두렵게도, 신박하게도 들렸다. 조금이라도 맥주가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각자 앞에 잔을 뒀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함께 이 소맥을 ‘원샷’했다. 한잔을 털어놓고 난 뒤에는 신기하게도 소주의 역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표면에 씌워진 맥주의 씁쓸함이 첫맛이었고 소주의 달짝찌근함이 끝 맛이었다. 대신 빠른 속도로 마셔야 중간층을 가득 채운 소주 맛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신기하다며 그렇게 몇 잔을 연속으로 마신 후에야 소주가 들어간 비율을 상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중국집에 들어선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술기운이 잔뜩 오른 서로와 마주했다. 이 술은 그야말로 호기롭고, 괴이한 청춘의 맛이었다.



 요즘도  좋아하는 친구를 낮에 만날 일이 있으면 중국집에서 약속을 잡곤 한다. 지금에야 중식을 먹을  고량주나 이과두주를 곁들이곤 하지만, 이때 함께한 술은 무엇보다 특별했다. 얼굴을 익히고서도 한참  서로를 찾아 어울렸던 우리에게  이후로의 술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맥을 제조해주던 친구는 그날이 지나고  나라로 이민을 했다. 몇몇 친구들은 군대를 갔고 지금은 소식도 모른  산다. 한자리에 다시 모이는 날이 아득하게 느껴질 뿐이다.

   나이가 들면 각자 초밥 접시의 색을 신경 쓰지 않고 먹을  있을  같다고 말했었다. 모두 같이 만나는 날엔  그렇게 식사를 하고, 해가 지기  중국집에 가고 싶다. 짬뽕에 탕수육이 아니라   값이 나가는 중화요리를 먹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친구가 만들어준 극강 비율의 소맥은 다시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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