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모 Jun 27. 2020

소주잔에 쥬시쿨을 따라 마시던 우리


2020년 사 월, 내 생일이 되던 날에 우리는 돗자리와 소주 두 병, 과자 몇 봉지를 사서 공원에 갔다. 벚꽃 아래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잔을 부딪쳤다. 바깥에서 과자와 술을 먹고 있자니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나와 친구는 하굣길의 정자를 사랑했다. 미끄럼틀 하나 정도 있는 놀이터 옆에 빤딱 빤딱한 붉은색 나무로 지어진 정자였다. 봄이면 정자 주위로 억센 가지의 작은 나무가 우거졌고, 여름이면 모기가 문 자리를 긁으며 밤이 될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비가 올 때는 슈퍼에서 종이 상자를 얻어와 정자에 깔아놓고 앉았다. 손이 꽁꽁 얼 것 같은 한겨울에도 그 정자를 찾았다.  

 그곳을 아지트처럼 여기던 건 중학생 때부터였다. “우리 고등학생이 돼도 여기 누워서, 이러고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던 기억이 난다. 육여 년을 매일 같이 붙어 다녔는데도 항상 할 말이 많았다. 좋아하진 않더라도 공부가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이었던 때니, 공부나 성적 얘기를 많이 했다. 친구와 나는 늘 반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 중 하나였다. 어린 때에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염세적이었고, 형편에 걱정이 많았다. 괜한 짐을 무겁게 어깨에 멘 아이들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소주 맛이 궁금했지만 쥬시쿨을 마셨고, 비싼 안주 대신 새우깡을 먹었다.


 정자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지만 대게 말이 많았기 때문에 대화와 함께 씹을 것이 필요했다. 먹던 것은 몇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상투적으로 매운 새우깡과 쥬시쿨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없던 우리가 가장 싸고 양이 많은 과자와 음료수를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쥬시쿨은 오백 미리 하는 것을 사서 빨대를 두 개 연결해 마시고, 새우깡은 포장지를 널따랗게 뜯어서 챙겨온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늘 그렇게 먹었다. 가장 싼 값에 사 온 것들이어도 격식은 차리겠다는 우스운 모양새로.

 우리 인생 첫 ‘단짠’ 혹은 ‘맵짠’의 시초는 바로 그 조합이었을 것이다. 꼭 그냥 새우깡이 아니라 매운 새우깡을 먹었다. 라면 수프의 강렬한 짠맛과 달고 신 맛 조금, 건새우 가루에서 날 법한 고소한 감칠맛이 중독적이었다. 젓가락으로 한 번에 하나씩 집어 먹기에 적당한 크기였고, 나름 새우깡 자신이 내뿜는 해산물의 은은한 맛이 괜찮았다. 간이 센 만큼 달달한 쥬시쿨과 함께 먹기 좋았다. 종이 곽에 든 커다란 쥬시쿨 한 팩이 오백 원 언저리였으니 과연 최고의 가성비였다. 처음엔 과일 그림도 잘 확인 하지 않고 집어 거의 자두 맛이었고, 어쩔 땐 복숭아 맛을 마셨다. 나중엔 나름 오래도록 고심해 가끔 파인애플 맛을 마시기도 했다. 끈끈하고 불량스러운 색의 액체와 질리지도 않고 고등학생 시절을 함께했다.

  번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던 , 우리 집에서 함께  쥬시쿨을 소주잔에 따라 마셨다. 어디서   있어서, 집에 있던 바나나를 얇게 썰어 집에서 제일  그릇에 깔아놓고 "이게 우리 안주야"하고 먹었다. 낄낄 웃으며  모금에  번씩 잔을 부딪쳐 마셨다. 소주를 마신 것도 아닌데 어른을 흉내 내는 행위가 왠지 조심스럽고 긴장되었다. 소주 대신 쥬시쿨이 담겼던 잔을 깨끗이 씻어 마를 틈도 없이 닦아 넣고 은밀하게 웃던 기억이 난다.  


 수능이 끝나고, 아주 날이 춥던 겨울에 우리는 체육복에 패딩을 입고 다시 정자에 앉았다. 나는 검은색 패딩, 친구는 남색 패딩을 입었다. 이날만큼은 쥬시쿨을 무심하게 지나쳐 술 코너로 갔다. 마음이 간질간질한 느낌으로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이고 팩 소주를 하나씩 샀다. 분명 떨리고 설렜을 것이다.

소주의 맛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밍밍하고 헛헛한 맛. 우리는 그제야 '진짜' 소주 맛을 알게되었다. 패딩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을 만큼 공기가 차가웠던 탓에 한 팩을 다 마실 때까지 취하는 줄도 몰랐다. 입김을 내뿜으며 “소주 맛 진짜 별거 없다” 그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이제 가정형편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고 돈보다는 하고 싶은 것의 가치를 따른다. 성적과 돈이 전부인줄 알았던 그 시절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아리고 애틋한 마음이 크다. 그때가 있어 친구와 나는 누구보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호기심을 참고 한참 뒤 마셨던 소주의 맛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중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성인이 돼도 여기서 수다 떨고 있을까?”라고 말했지만 내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한 탓에 다시 정자에 가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할 말이 많다. 쌀쌀한 여름밤 친구에게 다시 ‘아지트’에서 만나자고 연락해볼까 한다. 소주 대신 오랜만에 쥬시쿨과 매운 새우깡을 먹자고.


이전 06화 나의 돈까스 시대_2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