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케찹 돈까스와 왕대박 돈까스
돈까스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면 늘 ‘돈까스’라 답했고, 세계 어느 나라를 여행해도(하물며 프랑스나 멕시코에서도) 꼭 돈까스를 먹었다. 전공 과제로 돈까스의 역사에서부터 일본의 돈카츠, 한국의 경양식 돈까스,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을 비교하는 레포트를 다섯 장 작성한 이력(?)이 있고, 힙합 동아리에서 돈까스를 주제로 했던 공연이 벌써 세 번째 버전까지 나와있다. 학보사에서 쓰던 메일 주소는 ‘donkas’였으며 전주에 놀러 가서 세끼를 돈까스로 먹은 전적도 갖추고 있다.
이 과한 사랑의 시작은 분명 엄마가 구워 주던 냉동돈까스에서부터였다. 먹기 싫은 콩자반과 오이 무침을 먼저 급하게 다 먹어버리고, 느릿느릿 여유롭게 케찹에 푹 찍어 먹는 돈까스. 10년 전의 일기에 엄마의 돈까스를 찬양하는 내용이 세 페이지나 되는 것을 보고 나는 이 사랑이 꽤 오래되었음을 알았다. 엄마는 늘 언니와 나, 동생 세명의 접시에 똑같은 양의 반찬과 돈까스를 분배해주려 노력했다. 나는 반찬을 더 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아무리 아껴먹어도 언니에 비해 일찌감치 비워진 내 돈까스접시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곤 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 시절은 돈까스에 대한 애정의 과도기이자 절정기였다. 중학생 때부터 나와 함께 꾸준히 살을 찌워 온 친구가 있다. 우리는 대각선으로 앉아 오천 원짜리 치즈 피자를 한 판씩 시켜 먹었고, 도서관에 가면 라면과 삼각김밥 따위를 잔뜩 먹고도 습관처럼 간식을 챙겨 먹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트 돈까스를 애정 했다. 시험기간이 끝나면 관례처럼 꼭 맛있는 걸 사 먹었는데, 이때 항상 가던 곳이 마트였다. 솥뚜껑만 한 쟁반에 커다랗게 튀겨져 나오는 돈까스, 그 이름도 ‘왕대박 돈까스’였다.
그냥 왕돈까스도 아니고 ‘대박’이 붙으니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고기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았지만 그 시절엔 그저 양이 많아 보이는 게 아무렴 좋았다. 우리는 시험을 잘 치건 못 치건 이 돈까스를 먹기 위해 마트에 갔던 것이다. 벨이 울리면 둘 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싱글벙글 거리며 돈까스를 받아왔다. 친구는 소스를 좋아하지 않아 먹기 전 포크로 돈까스 소스를 긁어 모아 내게 몽땅 주곤 했다. 나는 이 소스를 아이스크림 스쿱처럼 뜬 밥에도 비벼먹고 샐러드와도 함께 먹었다. 눅눅한 돈까스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우리 입맛에는 딱이었다. 조용히 돈까스를 썰어 먹으며 “시험 보느라 수고했다”, “너도” 정도의 대화를 나눴다. 다 먹어갈때쯤이면 튀김 찌꺼기와 밥, 양배추, 소스를 한데 모아 비빔밥처럼 비벼먹었다. 그 옛날에 감질맛 나게 먹던 엄마의 돈까스를 좋아하던 나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마트 돈까스를 또 오래도록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