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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모 Jul 15. 2020

아구찜이 아니라 콩나물찜이어도 좋아

 아귀찜은 아귀로 만든 요리다. 그래서 표준어로 ‘아귀찜’인데 ‘아구찜’이 입에 더 잘 붙는다. 내가 태어난 곳인 마산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사투리로 아구찜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정감과는 별개로 아귀찜에 대한 기억의 시작은 불과 이 삼 년 전이다. 자주 사 먹고 접하지 못했던 이유는 첫 번째로 맛, 두 번째로 가격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매콤하고 얼큰한 맛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해물보다는 고기가 좋았고, 채소가 가득 들어간 음식은 왠지 끌리지 않았다. 먹어보려 하면 주머니 사정이 아쉬웠다. 그리고 스물두 살 엄마 아빠와 함께 갔던 식당에서 드디어 아귀찜을 먹어볼 수 있었다.


 시골에서 명절을 보내고 돌아와 저마다 조금씩 피곤했던 상태였다. 나는 낯선 음식에 대한 거리낌도 없이 고픈 배를 채우려 열심히 젓가락질했다. 따끈한 흰쌀밥과 함께 한 입에는 생선 살을, 또 한 입에는 콩나물을 먹었다. 찜이라기보다 볶음에 가까운 요리였지만 눅진한 소스에 범벅이 되어 있는 느낌이 ‘찜’이라는 이름의 둔탁함과 묵직함과도 잘 어울렸다. 그 푸짐한 인상과 맛에 매료돼 외국에서 사는 동안에도 종종 아귀찜을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전 서울에 갔던 날 다시 아귀찜과 재회했다. 에어컨 바람이 쌩쌩 부는 버스에 앉아 있자니 맵고 얼얼한 맛의 아귀찜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밥을 먹기 전 열심히 돌아다니며 진을 뺐다. 그래야 밥맛이 더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마일 때라 날이 덥지는 않았지만, 잔뜩 몸을 움직이니 목구멍이 답답했다. 시원한 맥주가 간절히 마시고 싶었다.


 식당 근처에 다다르니 ‘마산’ 이름이 붙은 전광판이 보였다. 아귀찜을 먹으러 지하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에는 강남에 있지만, 마산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병맥주로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있을 때쯤 커다란 쟁반에 아귀찜이 나왔다. 흰 쟁반과 대비되는 붉은빛이 먹음직스러웠다. 젓가락을 집어 들고 서둘러 간장에 고추냉이를 풀었다.

 이 식당 아귀찜의 첫인상은 ‘맛이 강하지 않다’였다. 자극적이지 않은 소스 덕분에 따로 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매콤한 맛이 충분히 나고, 감칠맛도 적당히 있어 계속해서 술을 불렀다. 시작은 맥주로 했지만 이런 음식에는 소맥이나 소주가 좋다. 매운 음식과의 궁합 때문도 있지만, 조금씩 덜어 소스에 찍어 먹고 작은 잔의 소주를 털어 마시는 느낌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오동통한 아귀 살은 다른 생선보다 두툼하고 쫄깃해 만족스러운 식감을 준다. 껍질과 지느러미 부분은 점액질 때문에 미끌미끌한 느낌이다. 살과 함께 먹으면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이 어우러진다. 언뜻 보이는 오만둥이도 별미다.


 푸짐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몇 번 젓가락질하면 살은 금세 동이 난다. 그래도 녹말이 배합된 끈적한 소스가 묻은 콩나물과 미나리가 남았다. 생선 살과 함께 먹는 궁합이 제일이지만 그냥 먹어도 충분히 좋은 술안주가 된다. 숙주는 줄 수 없는 통통하고 오독오독한 식감은 콩나물에, 진한 양념에도 묻히지 않는 향기로운 향은 미나리에 있다.

 아귀찜에서 주옥같은 존재가 된 아귀도 천대받던 시절이 있었다. 삼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어부들은 아귀를 못생기고 쓰임새 없는 생선으로 여겼다고 한다. 어부들의 부탁으로 선술집에서 콩나물과 양념을 넣고 만든 요리가 아귀찜 탄생의 시초였다.


 지금은 ‘아귀찜’에 들어가야 할 아귀의 양은 정작 많지 않고 콩나물 양을 뻥튀기해 만드는 집이 많다고 ‘콩나물찜’이라는 은어도 생겼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한가득 집어먹어도 끝이 없는 콩나물과 미나리 때문에 아귀찜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귀를 먹으려고 아귀찜을 시켰는데, 이 채소들이 보너스인 느낌이다. ‘우리도 맛있다구, 아쉬워하지 말고 밥도 한번 볶아서 같이 먹어봐’ 말하는 것 같다. 어느샌가 아귀살에 대한 아쉬움은 잊고 볶음밥을 주문한다. 여기서부터는 또 다른 음식이다. 소주와 함께 조금씩 집어 먹는 아귀찜이 ‘안주’였다면 디저트를 먹는 시간이다. 볶음밥을 먹으며 소맥을 말아 개운한 뒤 마무리를 한다.




마산의 전통적 아귀찜 요리법에 들어간 말린 아귀는 기성화 된 아귀찜의 아귀 살보다 쫄깃한 식감이다. 마산 오동동 아귀찜 거리에 가면 줄지어져 있는 아귀찜 식당을 만날 수 있다. 합성동 동마산 시장의 아귀찜이 좀 더 가성비가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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