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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모 Oct 09. 2020

자랑스럽게, 닭똥집 튀김


 올해 휴학을 한 번 더 했다. 이런저런 일을 시작했지만 꽤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때로는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기분과 다르게 몸에는 생기가 차다 못해 넘쳐서 매일 술을 마셨다. 아침 여덟 시까지 밤을 새다가 갑자기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숙취에서 깨어나기 전 밥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불규칙한 생활과 함께 시간은 무겁고 느리게 흘러갔다.

 그러던 중 ‘진짜 일’을 하게 됐다. 이태원에 있는 한 디자인 회사였다. 주어진 일을 마치면 그대로 끝인 단기 아르바이트였지만 나도 출근이란 것을 하게 된 것이다.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강남으로 가는 빨간 버스를 타고, 다시 파란 버스를 타는 일을 반복했다. 일주일만 지나도 이것 또한 지루하고 피곤해 질 거라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난 뒤 다시 두 시간을 내리 버스에 있는 일은 분명 피곤했지만 매일 벅찬 순간을 맞을 수 있었다. 아침 해를 눈부셔하며 분주하게 출근하는 사람들, 답답한 만원 버스에 당연하게 몸을 싣는 사람들, 퇴근 시간이 되면 다시 다른 곳을 향해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벅찼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표정으로도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게 멋져 보였다. 그리고 그 틈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기도 전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게 뿌듯해지면서 출퇴근 시간이 즐거워졌다. 특히 퇴근 후 먹는 음식이나 술은 전과 다르게 특별했다. 하루는 친구를 만나 회사 근처에서 맥주를 한잔하기로 했다. 재즈바나 엘피바를 찾아 오곤 했던 이태웠이었지만 이날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오래된 꼬치집을 갔다. ‘일했으니 마셔라!’라는 생각이 꼭 그런 가볍지만 아늑한 술집과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나보다 열살은 많은 꼬치집은 사람이 많은 거리에 있었다. 천막이 쳐져 있는 실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눈에 띈 닭똥집 튀김과 생맥주 2700미리를 주문했다. 커다란 꿀단지처럼 생긴 맥주를 양껏 부어 마시면서 닭똥집을 열심히 씹으면 퇴근에 걸맞는 호쾌한 기분이 들것 같았다.

 닭근위, 닭모래집보다는 왠지 ‘똥집’이라는 말이 더 정겹고 좋다. 닭똥집이 실은 닭의 똥, 혹은 모래와 전혀 상관없는 ‘위’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안도와 함께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모순적이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짓궂은 상상이 거짓이란 것을 알고 난 후에는 종종 닭똥집을 사 먹었다. 속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치킨이 더 자주 먹고 싶기야 했지만 닭똥집 튀김의 매력 또한 엄청난 것이었다.

 닭똥집은 닭 위의 근육 부분이기 때문에 식감이 독특하다. 처음 입에 넣을 때는 쫄깃하지만 동시에 툭툭 입안에서 흩어진다. 튀김 옷을 입히지 않은 닭똥집 튀김이나 기름에 살짝 볶은 닭똥집 볶음보다는 두꺼운 튀김옷을 입은 닭똥집 튀김이 좋다. 자기주장 강한 닭똥집만의 식감과 바삭한 튀김 옷이 꽤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꼭꼭 씹어 잘 넘긴 후에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또는 쌉싸름한 소주 한 잔을 마신다.


 이후로 매주 닭똥집 튀김을 먹었다. 일이 끝난  집에 가는 버스에서 잘못 내려 어느 낯선 도시에 도착한 적이 있다. 피곤함과 함께 기분이 울적해질 찰나, 작은 가게의 고소한 튀김 냄새가 목을 잡았다. 그곳에서 옛날 통닭 대신 닭똥집 튀김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튀김 기름에 젖어 미끌거리는 종이봉투에 손을 넣어  번씩 튀김을 집어 먹었다.  튀겨낸 뜨거운 닭똥집은 식었을 때보다  말랑하고 부드럽다. 튀김은 입안에서 쉽게 부스러져 금세 입에서 녹아내린다.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안의 봉투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 참겠다!’ 싶으면 은근슬쩍 손을 넣어 다시 닭똥집 튀김을 하나 집어 먹었다. 어리바리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가도  맛있는,  곳만의 ‘닭똥집 튀김 사러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마치 닭똥집의 정령이 나를 여기로 이끈듯했다. 비닐 밖으로 튀김 냄새가 퍼져나갈  그게 무척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닭똥집 튀김은 퇴근길의 내 친구가 됐다. 마지막 퇴근날에도 함께 일하던 사람과 닭똥집 튀김 그리고 소주를 나눠 먹었다. 잠깐이었지만 회사에 다니며 활기를 찾았고 닭똥집 튀김을 우적우적 씹으며 나의 성장을 축하했다. 언제든 그걸 먹을 때면 내도록 그런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무얼 하든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스스로가 벅차오를 만큼 자랑스럽고 멋지다 느껴지는 기분을 즐기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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