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아람산의 품 안에 있다. 학교를 3년 다니면서 전공 수업에서 교양 수업을 들으러 가려고, 운동장에서 도서관을 가려고 경사진 언덕을 넘나 들은 적은 많았지만, 이 산 깊은 곳을 탐험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탐험’이나 ‘모험’은 어릴 적에나 흥미를 끌던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산에 대한 호기심은 할머니 댁 뒤의 대나무 숲에 있었다. 어린 나의 키보다 한참은 커다란 대나무가 잔뜩 우거진 산은 신비로워 보였고, 산 둘레길을 지나갈 땐 바람이 우웅-하고 부는 소리가 들려 언뜻 무섭기도 했다. 그 대나무 숲을 들어가 보는 것은 10살 언저리의 내게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창살 같아 보이기도 하는 대나무 사이로 무엇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이의 상상 속에서는 숲 속에 들어가는 순간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 너머처럼 갑자기 눈 덮인 세상이 나타날 수도 있었고, 대나무를 베며 무술을 단련하고 있는 도사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빼곡한 대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작은 도토리들이었다. 대나무 산의 도토리들이라,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산 더 깊은 곳엔 대나무보다 참나무가 많았던 것뿐인데 나는 이 산에 더 큰 신비로움을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토토로의 숲>에 빠져있던 때라 그 후로 무수한 도토리가 밟히는 산을 ‘동구리의 숲’이라 부르며 온통 헤집고 다니기 일쑤였다. 도토리가 마법의 돌멩이라도 되듯 나무 막대기로 썩은 나뭇잎을 살살 파헤쳐 발견하겠다고 꼬맹이 동생을 대원처럼 데리고 “동구리의 숲에 가자!” 하며 앞장서 걷곤 했다. 그 산에 있는 도토리를 모두 발견하면 더 깊은 산중에 사는 토토로를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라도 있듯이.
10년이 더 훌쩍 지난 이제는 그 산에 토토로가 살지 않는다는 것쯤은 안다. 호기심을 못 이겨 야산에 가는 일은 없고, 무언가를 개척하거나 찾아 나서겠다는 탐험은 일찍이 관둔 지 오래이다. 대신에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들을 해나가기 위해 낭만 가득한 비현실을 잊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람산이 궁금해졌다. 여유롭던 때도 아니고 학교에서 한참 과제를 하다가 말이다. 며칠씩 심신을 고달프게 했던 과제였는데, 여기서 잠시만이라도 도피할 수 있다면 아주 새로운 곳, 이를테면 한 번도 관심 두지 않던 학교 뒷산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슬리퍼에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과제 방을 나섰다.
야트막한 언덕부터 이어지는 산을 오르며 여름날의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맡았다. 호흡이 가빠지는가 싶다가도 숲 속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면 온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울퉁불퉁하지만 평평하게 나 있는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상상치 못하게 커다란 호수를 마주했다. “학교 가까이에 호수가 있대”라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으면서도 우연히 시작된 산행의 끝에서 만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호수 한편에는 평상이 마련돼있는 식당 하나가 덩그러니 보였다. 산에 둘러싸여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발길을 이끌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던 나는 쭈뼛쭈뼛 평상에 앉아 메밀전병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막걸리는 뒤에 철통에서 퍼다 마셔요” 주인 분이 무심하게 한마디를 하고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병 막걸리가 익숙하던 내게 ‘셀프’ 잔 막걸리는 새로운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둥글고 묵직해 보이는 철통의 뚜껑을 열어보니 막걸리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양은으로 된 그릇을 하나 집어 들어 양철 국자로 노랗고 하얀 막걸리를 양껏 퍼담았다. 산행으로 목구멍이 바짝 말라 눈앞의 술 한 잔에 침이 절로 넘어갔다. 메밀전병을 기다리며 저수지가 잘 내다보이는 평상 끝에 자리 잡아 막걸리를 들이켰다. 철통에 들어있었다고, 기분 탓인지도 모르게 그게 평소 마시던 막걸리보다도 훨씬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목구멍을 차갑게 적신 뒤에는 기분 좋은 단맛이 따랐다. 뒤이어 메밀전병이 따끈한 김을 뿜으며 등장했다. 기다란 모양이 가지런히 썰려 김칫소가 사이사이로 보였다. 쫄깃한 메밀 피의 고소함과 전병 속의 매콤한 맛이 잘 어울렸다. 채 식지도 않은 전병을 몇 점 먹고서 다시 막걸리로 입안을 비워냈다.
골을 썩이던 과제는 까맣게 잊은 듯이 한참 동안 반짝이는 호수와 그 너머 산을 바라보며 그동안에 제쳐둔 낭만을 느꼈다. 아이의 호기심과 같은 마음이 준 선물이었다. 작은 도토리 대신 커다란 호수, 커다란 토토로 대신 작은 잔 막걸리를 발견한 나는 다시 어른의 호기심을 가지고 또 다른 산을 탐험해볼 생각이다. 그곳에 사는 무언가를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