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해 주는건
성인이 된 후에는 이 세상에 마트 돈까스보다 맛있는 돈까스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언제나 동기들에게 돈까스를 먹으러 가자고 꼬드겼고, 그게 안되면 혼자서라도 돈까스 맛집을 찾아 나섰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우울한 기분일 때도 돈까스를 먹었다.
어느 날은 서울에서 대외활동 모임이 있었다. 첫 사회생활의 여파는 몸도 마음도 굶주리게 했다. 물렁물렁한 스무 살 초반의 나는 사회의 벽이 무척 단단하고 거친 것임을 느꼈다. 다행히 그날 밤 무엇이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마침 거리에는 정직한 궁서체로 ‘돈까스’라 써져있는 간판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가게에 들어서니 하얀 튀김옷을 입은 돈까스 여러 겹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가게는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났고 테이블마다 우리 아빠 또래로 보이는 직장인 분들이 보였다. 모두 돈까스와 함께 당연하단 듯이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 앉아 돈까스와 맥주를 시켰다. 돈까스 튀겨지는 소리가 찌르르 들리고 이윽고 도마 위에 올려져 서걱서걱 썰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가로로 기다랗게 한 번, 그리고 세로로 여러 번 썰려 한 입 크기로 내어져 나왔다.
소스에 흠뻑 젖은 경양식 돈까스가 익숙하던 내게는 이때 이 돈까스가 신세계처럼 느껴졌다. 젓가락으로 먹는 빠삭한 돈까스, 그릇에 낯설게 자리한 노오란 겨자까지.. 한 점을 집어 드니 튀김의 까끌거리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조심스레 입안에 넣고 씹으니 바삭한 정도가 지나쳐 입안이 아팠다. 고기보다 튀김옷이 훨씬 더 두꺼운 탓에 아주 기름지고 고소한 과자를 먹는 것도 같았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열심히 돈까스를 씹었다.
튀김이라는 단단한 철갑옷을 입은 고기를 힘껏 씹는 행위가 희열처럼 느껴졌다. 겨자에 조금 찍어서도 맛보고 진한 갈색의 우스터소스에도 겨자를 풀어 찍어 먹어보았다. 처음 맛보는 돈까스와 겨자의 조화는 꽤나 잘 어울렸다. 알싸한 겨자의 맛이 느끼해질 법한 돈까스와 고기의 잡내를 기가 막히게 잡아주는 듯 했다. 밥은 함께 나온 연한 된장국에 말아서 먹고, 시원하고 매콤한 맛의 깍두기는 앞의 돈까스처럼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묵직하고 두터운 돈까스만큼이나 위압감을 주던 생맥주도 기억난다. 이 가게는 30여 년 전 호프 집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어쩐지 소란스럽고 투박한 분위기가 생맥주를 들이키기에 좋았다. 하얗게 서리가 낀 유리잔에 담긴 맥주는 무거웠다. 곧장 돈까스를 한 점 먹고 맥주로 입을 헹구는 식으로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탄산이 입 안을 따끔하게 때리고 내려가 시원한 흔적을 남기고, 씁쓰레한 뒷맛이 다시 돈까스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