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세계
할머니는 몇 개월 전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내게 “이제 다 컸다, 대견스럽다”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에 왠지 모를 죄송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혼자서 먼 세계를 일주하면서도 왜 할머니의 세계에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곧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그날은 가족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등산 가방에 옷 몇 가지와 칫솔, 그림을 그릴 공책 정도를 챙기고 대구행 기차에 올랐다.
선녀마을은 금계산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매우 맑아 하늘에서 칠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어 이 마을을 선녀곡이라 한다. 할머니의 집은 굴다리를 지나면 나오는 마을 초입에 위치해 있다. 파란색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삼십여 년 전 할아버지께서 설계해 지으셨다는 작은 집이 나온다. 매끈한 청록색과 다홍색의 타일이 군데군데 들어가 있지만 한옥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부엌에 앉아 있으면 창 너머로 커다란 청산이 보인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비 내리는 날엔 비 냄새를 맡으며 전을 부쳐먹었고, 무더운 날엔 볕을 피해 시원한 국수를 말아먹었다.
할머니 댁에 가기 전 나는 새벽 세 네시에 잠이 들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떴다. 학교를 쉬고 있으니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의 시간을 온종일 짓눌렀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 치열하게 사는 것도 하지 못했다. 무기력함을 곁에 두면서도 살아보겠다고, 하루에 한 끼를 겨우 챙겨 먹곤 했다. 엄마가 만든 반찬이 냉장고에 쌓여 있다는 걸 알면서도 거의 매일 라면과 냉동식품을 먹었다. 건강하고 맛있게 차려 먹는다는 게 사치이고 부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할머니의 밥상을 차려드리며 당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선녀마을의 시간은 멈춰있는 듯했고 스스로 만든 압박감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할머니는 여서 일곱 시, 동이 틀 때쯤 일어나 밭에 가셨다. 오월의 아침해는 따뜻함과 뜨거움의 경계에 있었다. 그늘 한점 없는 밭에 몇 분도 채 안 있으면 땀이 삐질 흘렀다. 밭 사이를 조심스레 지나간 다음 할머니 곁에 앉아 깨밭의 깨를 솎아 주었다. 여러 가닥 난 싹을 세 개씩만 남기고서 조심스레 뽑아 주는 작업이었다. 검은 비닐 속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던 싹은 살살 파내어 다시 구멍 위로 올려주고, 며칠 전 심은 옥수수 모종과 가지에는 물을 흠뻑 뿌려주곤 했다.
고구마 옆에 비집고 자란 참비름이나 이름 모를 잡초들을 모두 뽑아주면서 아침 밭 일을 마무리했다. 참비름은 취나물처럼 향도 맛도 좋은데 자꾸 고구마 밭에 잔뜩 나서 골치를 아프게 했다.
한가득 뽑은 참비름은 나물로 무쳐 먹기로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조금 일했다고 몸에 잔뜩 열이 올라 곧장 대청마루에 드러누웠다. 그늘 아래 차가운 나무 바닥 사이로 한기가 느껴지다가 곧바로 허기짐이 몰려왔다. 시계를 보니 아홉 시가 막 지나가고 있었다. ‘집에 있었으면 한참 뻗어서 잘 시간인데...‘ 나는 정말로 배가 고팠고 그게 놀라웠다.
지친 몸을 위해 든든하고 푸짐한 한 끼를 먹고 싶었다. 이것저것 넣어 한데 비벼서 입 안 가득 넣고 한참을 씹어야 하는 비빔밥 같은 것 말이다. 마침 할머니의 냉장고에는 각종 나물 반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외삼촌이 따온 고사리가 햇볕 아래에서 잘 마르고 있었고, 참비름도 비빔밥의 재료가 되기에 충분했다. 내가 밥을 짓고 나물을 준비하는 동안 할머니는 아랫집 어르신이 가져다 주신 고추로 무침을 하셨다. 이 고추들은 단단하지가 않고 물러서, 무침을 해 먹으면 맛있다며 씻은 고추를 바가지에 담고 부엌 한편에 자리를 잡으셨다. 고추와 찹쌀가루를 함께 툴툴 털듯이 버무려 찜기에 넣고 찌면, 흰 가루가 익으며 투명하게 변한다. 할머니는 여기에 칼 손잡이로 마늘을 빻아 넣고 설탕, 굵은 고춧가루, 깻가루, 맛소금을 넣어 무치셨다. 정확한 계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동작이 아주 빨라 마치 할머니가 대단한 요리사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한 바퀴 둘러주니 작은 부엌에 고소한 향이 진동했다.
나는 다 지어진 포실포실한 밥을 커다란 양푼에 퍼담았다. 미리 무쳐놓은 참비름과 고사리를 넣고 반찬 통에 있던 나물들도 젓가락으로 대충 집어 밥 위에 던지듯 올렸다. 할머니의 고추장도 맛이 좋지만 이번엔 된장을 넣어 비벼먹기로 했다. 여기에도 참기름을 한 두 숟가락 넣고 밥과 나물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 보이도록 마구 비벼주었다. 비빌 때마다 쇠숟가락이 양푼에 닿아 경쾌한 소리를 냈다.
“할머니, 다 됐어” 나는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표정으로 섞인 비빔밥을 들어 보였다.
된장을 넣은 비빔밥은 자극적이지 않고 삼삼했다. 동그랗게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고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담백한 맛 때문에 나물 하나하나의 향과 맛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참나물과 참비름 나물의 싱그러운 초록 향, 하얀 도라지의 향긋함도 입안을 감쌌다. 고사리와 미역줄기의 꼬들꼬들한 식감도 좋았다. 나는 밭일을 끝내고 새참을 먹는 농부를 상상하며 또다시 한 숟가락을 크게 떠 우걱우걱 먹었다. 담백한 비빔밥에는 할머니의 매콤한 고추무침도 잘 어울렸다. 찹쌀은 고소했고, 한 번 쪘음에도 고추의 아삭함과 향이 살아있었다. 달콤하고, 짭짤하고, 매콤한 맛에 계속 손이 갔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면 할머니는 달짝 찌근 하고 뜨거운 믹스커피를 만들어 놓고 계셨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사랑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이종격투기도 봤다. 할머니는 혀를 내밀며 “메롱”을 자주 하셨고, 내가 만난 사람 중 제일가는 이야기꾼이셨다. 양말을 팔기 위해 군인 열차를 타고 포항에 갔던 이야기, 안동에 가서 찬물에 만 보리밥을 얻어먹고 한 밤중에 배탈이 났던 이야기, 찬 바닥에 몸이 시릴까 엄마를 배 위에 올려놓고 재웠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웃으라고 일부러 더 짓궂고 해맑은 표정으로 그때 그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그런데도 지금 내 나이 때 당신과 엄마를 상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할머니의 세계는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까, 나는 모든 걸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할머니의 주름지고 딱딱한 손을 잡았다.
커피를 다 마시고 그렇게 조금 시간을 보내다 할머니는 대문을 나서셨다. 마을 어귀에 앉아 동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나는 사랑방에서 뒹굴거리며 그림을 그리다가 다시 외출을 했다.
마을을 산책할 때마다 돌나물 군집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꽃을 피워 마치 노란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은 생김새였다. 줄기는 가느다랗고 잎은 자그맣지만 손끝으로 만져보면 오동통한 살이 느껴지는 게, 꼭 자기도 밥상 위에 올라가면 한 역할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듯했다. 나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돌나물에 왠지 모를 애정이 가서 산책 끝에 한 움큼을 가져오곤 했다. “우리의 양식이 돼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할머니는 이 돌나물로 물김치를 담가주셨다. 돌나물은 흐르는 물에 두세 번 헹구어 주고, 밀가루를 푼 물을 준비하셨다. 고춧가루를 넣고 섞어 채에 한 번 걸러준 후 소금으로 간을 하고, 얇게 채 썬 양파와 돌나물을 넣으면 물김치가 뚝딱 완성됐다. 만들어진 물김치는 냉장고에 숙성시켜 시원하게 먹었다.
작년 가을에 캐놓은 고구마를 쪄서 이 물김치와 함께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당신이 키우신 고구마는 내 팔뚝보다도 큰 길이와 두께를 자랑했다. 나는 그게 꼭 고구마가 아니라 무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그 맛은 퍼석하지 않고 속까지도 아주 부드러웠다. 이로 힘을 주고 씹지 않아도 금세 입안 곳곳을 채우는 정도의 질감이었다. 추운 겨울 포슬포슬한 군 고구마에 김장김치를 함께 먹는 궁합도 좋지만, 여름이 다가오던 이때의 달달하고 쫀득한 찐 고구마와 시원하고 아삭한 돌나물김치의 맛을 더 행복하게 기억할 것 같다.
해가 저물기 전에 할아버지 산소까지 걸어가 보기로했다. 산소를 가는 길은 뻐꾸기 우는 소리가 메아리 퍼지듯 울리는 깨끗하고 깊은 산중이다. 커다란 오디나무 밑에 사람들이 따거나 줍지 않아 물러 터진 오디가 잔뜩 떨어져 있다. 나는 고향 집 뒤에서 따먹던 살구만큼이나 선녀마을의 오디를 좋아했다. 지금은 고추와 복분자가 자라는 할아버지 밭에서 열 손가락과 입술이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도록 오디를 따먹던 것을 기억해냈다. 손톱 밑이 새카매지는지도 모르고 작지만 옹골찬 오디를 신나게 땄다. 길 군데군데 뱀딸기도 자주 보이지만 산딸기는 따기 쉽지 않은 위치에 덩굴져있어 바라만 보고, 입맛을 다실뿐이었다.
얼굴 앞에 왱왱거리는 날파리와 싸움을 하며 산소에 도착했다. 혼자 할아버지 산소에 오는 것은 처음이지만 괜히 묘비를 닦아드려 보기도, 잡초를 뜯어보기도 했다.
할머니는 밭이나 산에서 자주 보이는 흰나비를 보며 할아버지가 나비로 다시 태어나셨을까, 새가 되어 태어나셨을까 하셨다. 뭐든 잘 드시는 할머니께 "할마이 얌생이다, 얌생이"하셨던 이야기, 전축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를 따라 손을 동그랗게 말고 춤을 추던 할머니를 보시며 "할마이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제"라고 하셨던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가 얼마나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계신지 알았다. 당신은 다음 생에는 새로 태어나 훨훨 날면서 이곳저곳의 외국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우리도 모르게 이미 새로든, 나비로든 다시 태어나신 후 실컷 여행 중이실지도 모르겠다며.
산소에서 돌아온 후, 할머니는 저녁으로 전을 부쳐먹자며 정구지를 한 단 베어 오라 하셨다. 나는 부추를 뜻하는 이 사투리를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해가 저물고 있으니 닭들도 다시 닭장 안으로 들여보내야 할 시간이었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밭을 돌아다니는 닭들을 몰아넣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건 엊그제 태어난 병아리 다섯 마리였다. 아주 작은 보폭이지만 그들에겐 최선인 속도로 어미 닭을 부지런히 따랐다. 식구들이 모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닭장 문을 닫았다.
부추를 들고 밭을 내려가는 길, 마을 옆으로 해가 붉게 타오르며 지는 모습이 보였다. 노을의 잔상이 어스름하게 남을 때까지 하늘빛은 계속해서 변해갔다. 할머니는 가져온 부추를 가볍게 씻어 손가락 마디만 하게 썰라고 하시고 당신은 전의 반죽 물을 만드셨다. 부침가루와 물을 적당히 넣고, 아침에 닭장에서 가져온 싱싱한 달걀을 여러 개 넣으셨다. 덕분에 반죽 물은 흰색보다 누런색에 가까웠다. 할머니는 여기 손질한 부추를 넣고 휘휘 저어 예열한 팬에 넓다랗게 부쳐내셨다. 시장에서 볼법한 커다란 전을 흐트럼없이 부쳐내시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 음식 솜씨 짱...”하고 감탄할 뿐이었다.
물론 그 맛도 좋았다. 할머니의 전은 밀가루 맛보다는 달걀 맛이 더 진하게 느껴져, 훨씬 고소하고 부추와도 잘 어울렸다. 밭에서 갓 베어온 부추는 알싸하고 싱싱한 맛이 강하게 났다. 기름을 잔뜩 머금은 전의 가장자리 부분은 바삭했고, 속의 식감은 두툼하니 푹신했다. 나는 단번에 막걸리를 생각했고 할머니도 막걸리가 마시고 싶다 하셨다.
삼촌은 술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맥주와 막걸리를 떨어질 새 없이 냉장고에 채워 넣어 주셨다. 투박하지만 건강한 시골의 밥상에 막걸리가 꼭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소하고 담백한 쌀의 맛이 술을 마시는 느낌보단 함께 좋은 음식을 곁들여 먹는다는 느낌을 주는 듯했다.
아직 식지 않은 따뜻한 전을 찢어 한 입 먹고, 차갑고 달콤한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잠에 잘 들지 못하던 나는, 그날 밤에는 막걸리 두어 잔에 꿈도 없는 아주 깊고 편안한 잠을 잤다.
대구가 뜨거워질 무렵 선녀마을을 떠났다. 네시 기차를 타야 했던 내게 할머니는 저녁까지도 먹인 후에 떠나보내고 싶어 하셨다. 좋아라 하며 먹었던 고구마를 가장 두꺼운 것으로 몇 개 넣어주시고, 농사지으신 복분자 진액도 물에 태워 쥐어주셨다. 그러고도 더 맛있는 걸 해주지 못했다며 미안해하셨다. 나는 다음에는 더 열심히 농사일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당신은 내가 굴다리를 지나 마을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나를 바라보셨다.
도시에서 밥을 먹고 나면 이상한 허망함이 몰려오곤 했다. 맛도 잘 모르겠는 자극적인 음식을 쫓기듯 먹었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그런 음식을 찾았다. 참 쏜살같게 지나가는 손톱만큼의 행복이었다. 나의 허기짐은 영혼의 배고픔에 가까웠던 것도 같다.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 살기 위해 먹는 음식.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녀마을에서 참 배부른 행복을 누렸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세계에서 실컷 울고 웃고, 일하고 먹으며 든든하고 행복했다. 살기 위해 먹은 것이 아니었다. 먹었기 때문에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달고 쌉싸름한 복분자를 마시며 당신이 내게 해주신 음식들, 들려주신 이야기들,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