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원
모든 동물은 저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따라서 필요한 환경도 모두 다르다. 무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을 느끼는 종이 있고, 무리 규모에 따른 공간의 크기, 구성원의 나이와 성별 등 조건에 영향을 받는 종이 있다. 단독 생활을 하는 종도 있다. 필요로 하는 영역이나 활동범위도 다르고 알맞은 기후, 토양, 식생도 제각각이다. 동물원은 이를 고려하여 동물에게 야생과 가장 비슷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우드랜드 파크 동물원은 면적 26만㎡가 넘는 시설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300여 종의 야생동물 1000여 마리를 전시한다. 경관 몰입형 기법을 처음 선보인 동물원이기도 하다. 경관 몰입형 기법이란 자연 서식지를 축소시켜 재현하는 방식으로, 관람객이 야생에 살고 있는 동물을 엿보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처럼 훌륭한 동물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고 기본적인 영양과 위생조차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나라 한 프랜차이즈 실내 동물원은 근거리 전시와 체험을 내세우며 관람객을 모은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사막여우를 사람들이 만지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사육장 밖에 두는 일이 목격됐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과 접촉이 가능하기 때문에 동물은 소음과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더군다나 실내 동물원은 자연 채광과 신선한 공기 등 자연적 요소와 단절되어 있다. 동물의 특징에 상관없이 콘크리트 바닥과 유리 벽으로 된 사육장에 전시하는 곳도 많다.
목적 없이 반복적으로 이상행동을 하는 정형 행동도 적합하지 않은 환경 때문이다. 북극곰은 야생 상태의 활동 범위가 동물원 우리 면적보다 100만 배 넓다. 하루의 6시간을 안절부절못한 상태로 서성거리고 새끼 폐사율은 65%에 이른다. 호랑이의 활동 범위는 수컷이 267~294㎢, 암컷이 70~84㎢이다. 여름철 아프리카 코끼리의 활동 범위는 수컷이 37~40㎢, 암컷이 18~20㎢이다. 겨울철에는 수컷이 62~71㎢, 암컷 무리가 36㎢이다. 넓은 활동 범위에 걸맞은 자유를 누리기에 동물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또 동물원에서는 먹이를 찾거나 사회적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등 자연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동물원에서는 많은 동물이 동물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을 누리지 못한다.
멸종위기종 보전
생태계 파괴가 심각해지며 야생에서 수가 줄어든 종을 동물원에서 번식시켜 보전한다. 번식 성공률은 높아지고 있으며 서식지에서 사라진 종을 동물원에서 번식시킨 후 자연 방사한 사례도 있다. 2005년 서울대공원은 반달가슴곰을 번식시킨 후 지리산 국립공원에 방사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식지에서 동물을 잡아 오기보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를 기르기 때문에 야생을 경험하지 못한 개체가 대부분이다. 자연 방사했을 때 동물원에서만 살았던, 다시 말해 한정적인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사람이 주는 짜인 식단만 먹으며 일생을 보낸 동물이 야생에서 잘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동물을 보여주는 일이 왜 필요할까? 오히려 대규모 보호 구역이 적합하다.
교육
동물원은 관람객에게 동물의 종류와 특징, 서식지, 멸종위기에 처한 이유 등을 알려주어 최종적으로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키운다고 한다. 이런 홍보 때문에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동물원에 방문한다. 동물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고 배움을 얻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교육일까? 야생에 비하면 너무나도 좁은 곳에서 동물이 동물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상황은 결코 교육적이지 않다. 마음에 와닿는 영상과 설명으로도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 가상현실 등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이용한 체험이 개발되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연구
동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데 동물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연구를 지원하는 동물원은 아주 적고, 그중에서도 과학자와 전업 연구 계약을 맺은 동물원은 극히 일부이다. 또 동물의 습성 연구에는 야생 동물이 동물원의 동물보다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자연과는 정반대인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 야생 동물보다 더 온전하고 정확한 정보를 줄 수는 없다. 동물원의 동물이 꼭 필요한 연구가 있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동물원은 필요 없다.
오락
멸종위기종 보전, 교육과 연구 기능도 있다고 하지만 결국 동물원은 관람객을 모아 돈을 버는 곳이다. 관람객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동물원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동물원을 찾을까? 오락을 위해서이다. 지구 반대편에 가도 보기 어려운 동물도 동물원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희귀한 동물을 가까이서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놀라운 경험이다. 오락은 초창기 동물원이 지어진 이유이자 현재까지 동물원이 유지되는 가장 실질적인 이유이다.
다음은 <동물원에 동물이 없다면> 중 일부를 요약한 내용이다.
‘홍학은 적게는 50여 마리, 많게는 1000여 마리씩 무리 생활을 한다. 주위에 천적이 있는지 늘 살펴야 하고 천적에게 습격을 당해도 개체 수가 많아야 공격당할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원에서는 여러 마리를 기를 여건이 안 된다. 무리 생활 불가능은 홍학에게 불안감을 준다. 매일 찾아드는 관람객은 홍학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홍학은 사람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고 오가는 모습을 살피며 경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느라 알을 낳아 품을 여유가 없다. 매년 봄마다 번식하는 흉내를 내며 흙을 모아 둥지를 만들지만 알은 낳지 않는다. 한적한 곳에서 특별 관리를 받는 홍학만 번식한다. 거울로 둘러싸인 곳에서 생활하는데, 거울에 비친 자신을 다른 홍학로 착각해서 무리 생활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속임수이다. 이렇게 1~2년을 보내면 일부는 알을 낳아 번식한다.’
동물원에서 사람이 유발하는 소음, 움직임, 시선 등 행동 하나하나가 동물에게는 스트레스다.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못하면 불안감과 경계심이 표출되어 건강한 생활과 번식까지 영향을 미친다.
무분별하게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도 문제다. 동물의 건강 및 영양 관리에 주는 위험 외에도 동물이 관람객을 보면 부리나 손을 내밀어 먹을 것을 구걸하게 훈련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정해진 동물에게 정해진 먹이를 주는 것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체험에 동원되는 동물은 다른 개체와 분리해서 길러진다. 필요할 때 정해진 장소에 있어야 하고 사람에게 공격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공격성 감소는 야생성 감소를 의미한다. 체험에 동원된 동물은 체험 프로그램이 없어져도 다른 개체와 어울리지 못한다. 다시 무리에 사회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동물원은 인간이 스스로가 자연 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착각하게 만든다. 동물원은 인간의 오락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사람들이 동물원을 찾는 가장 주된 이유는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관람객이 돌아다니며 갇혀 있는 동물을 보고 먹이를 주는 등의 체험을 하는 구조 역시 인간 중심적이다. 이를 고려하면 동물원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가 자연 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착각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수많은 종 위에 군림하는 단 하나의 종이 아닌 수많은 종 가운데 일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은 도덕적 요구이자 인류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인간은 지금까지 멸종위기로 내몬 동물과 이미 멸종시킨 동물에 대한 책임이 있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동물원을 소비하기 전에 동물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동물이 동물원 또는 자연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생태계 파괴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인지 알고 느낀다면 동물을 구경거리 또는 상품으로 대하는 태도는 바뀔 것이다. 동물원이 동물과 생태계를 보호하는 곳이 되려면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것은 동물원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이다.
참고자료
<동물원에 동물이 없다면> 노정래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최혁준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 피터 싱어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