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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un 09. 2023

튀르키예와 에르도안

송영조

 2023년 2월 6일, 튀르키예 동남부 및 중부, 시리아 서북부에 걸쳐 모멘트 규모 7.8에 이르는 지진이 발생했다.  정식 명칭은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첫 진동 후에도 다수의 여진이 발생하며 최소 170,000 명의 사상자를 남기고 1조 5,862억 리라(한화 약 109조 원)에 이르는 피해를 불러온 전대미문의 자연재해였다. 

(2016~2023년 터키 소비자물가지수 그래프)

 이와 동시 201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인 터키 리라는 2020년대를 필두로 가치가 급속히 떨어져 지난 8월에는 전달 대비 85%의 가치하락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은 이번 5월 13일에 열린 대선에서 승리하며 세 번째 당선을 거머쥐었다.  2003년 총리직에 취임한 후 20년 동안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에르도안, 그가 이토록 오래 정권을 장악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튀르키예와 에르도안에 대해 알아보자.





 1. 에르도안, 그는 누구인가? 

(에르도안 現 튀르키예 대통령)

 에르도안은 독실한 이슬람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모교는 이스탄불 이맘 하디프 고등학교(İstanbul İmam Hatip Lisesi)로, 모스크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직함인 뮈에진(Müezzin)이나 종교지도자인 이맘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 교육기관이다. 에르도안 집권 이전에는 이맘 학교 출신으로는 대학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며, 세속주의 상류층 사이에는 이맘 하디프 고등학교 졸업자를 차별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아 있었다. 에르도안도 이런 반(反) 종교적인 사회 속 이맘 학교 출신으로서 이슬람교도에 대한 차별을 느끼며 자랐다 증언한다.





 2. 정치활동

(에르바칸 前 튀르키예 총리)

 이런 불만을 품고 있던 에르도안은 자신의 멘토였던 네지메틴 에르바칸(Necmettin Erbakan)이 속한 국민구제당(Millî Selâmet Partisi, MSP)청년단체에 가입하며 정치계에 입문했다. 이후 국민구제당이 종교적,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불법 판별되자 에르바칸과 그의 동료들은 ‘복지당’(Refah Partisi, RP)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창당. 에르바칸을 따라 당원이 된 에르도안은 차별받고 있던 이슬람 노동자 계급을 옹호하며 서서히 복지당의 스타로 떠올라 1994년, 이스탄불의 시장으로 당선된다. 공개적으로 이슬람주의적 성향을 밝힌 정치인이 실권을 잡게 되며 자유가 탄압되고 샤리아(이슬람 율법)가 시행될 것이라 우려했던 많은 이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에르도안은 시장 초기부터 이스탄불 내 교통, 오염 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 실행하며 현실적이고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에르도안의 당선 2년 뒤인 1996년, 에르바칸이 터키 공화국 최초 이슬람주의 총리로 당선된다.

 

그렇게 친 이슬람 당이 여당으로 자리 잡았지만 불과 1년 후인 1997년에는 군의 개입으로 에르바칸의 퇴출, 이어 98년에는 헌법재판소의 복지당 위헌 판결로 인해 터키 내 이슬람주의 세력이 대폭 위축되었다. 에르도안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에 처해졌지만, 그의 감옥살이는 뜻밖으로 그의 인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에르도안의 형량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석방 후 새 인기에 힘입어 에르도안은 정의발전당(Adalet ve  Kalkınma Partisi, AKP)을 창당했다.                   

정의발전당

  2002년 총선에서 정의발전당은 이례적인 압승을 거두어들였고, 그는 이듬해 총리직에 취임했다. 반(反) 유럽적이었던 복지당과는 다르게 그의 AKP는 표면적으로 터키의 EU 가입, 정치의 자유화를 우선순위로 두었고, 무엇보다 이슬람주의를 버리고 보다 포괄적인 보수정당의 역할을 차지했다. 에르도안은 2003년 집권하면서 노동법을 크게 강화했다. 주당 노동시간 기준을 45시간으로 하고, 연장근무를 연 270시간 이내로 제한해 노동자의 권익을 강화했다. 또 인종, 성별, 종교, 소속 정당에 따른 차별을 금지시켰다. 오랫동안 터키인들의 골칫거리였던 쿠르드인 문제어느 정도 진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 정의개발당은 46.6%, 49.8%의 지지율로 승리하면서 그는 11년간 총리직을 지냈다. 서서히 그는 총리의 권한으로 군대를 장악하고 사법부를 재조성 하는 등 힘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에르도안은 2010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꿔 실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한 후, 2014년에 직접 대선후보로 출마해 승리하며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정권을 장악한 에르도안은 그가 집권 초기에 내세웠던 가치를 배반하며 점차 종교적인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음주, 낙태를 제한하고 사립학교를 폐쇄하는 동시 이맘 하디프 학교를 설립했다. 이에 더해 정부 초기 지향했던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대우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 발언한 바 있다. 이런 에르도안의 강압적 정책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은 2016년,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수천 명의 사상자만을 남기고 실패로 돌아간다. 에르도안은 다시금 위기를 계기 삼아 쿠데타와 연관 있다 판단한 수만 명을 체포, 감금한다. 

(2016 쿠데타 당시 사진)

 그에 더해 2017년 초, 다시금 개헌을 통해 대통령 중심 체제를 강화한다. 2018년 6월 24일 치러진 대통령 및 국회의원 총선 통합 선거에서, 에르도안은 대선에 출마하여 53.2%의 득표율로 당선 확정. 총선에서는 정의개발당이 42.3%를 얻으며 에르도안의 집권이 확고해진다.




3. 현재, 그리고 미래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한 에르도안은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로 이례적 물가 상승, 가지안테프 지역 지진까지 여러 문제에 봉착했다. 민생이 어려워지면 당연히 현직 지도자의 지지율도 떨어지기 마련. 2023년 대선이 코앞인 상황에서 해외 물론 국내 여론조사로 미루어 보았을 때도 에르도안과 AKP의 지지율이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지금껏 분화되어 있던 잔류 야당이 아니었다. 현대 터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창건한 공화인민당(Cumhuriyet Halk Partisi, CHP)을 필두로 주요 야당이 뭉친 국민연합이 우세한 모습을 보여줬다. 


 정의발전당의 에르도안과 공화인민당의 케말 클르츠다로울루(Kemal Kılıçdaroğlu) 간의 대결이었다.  

(우측 공화인민당 당수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좌측 現 대통령 레제프 에르도안)


 하지만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5월 28일에 열린 대통령 결선 선거에 에르도안이 52.2 대 47.8의 투표율로 당선된 것이다.  강력한 야당 세력에도 불구하고 정의발전당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터키를 이해해야 한다. 앞선 지진에서도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튀르키예 인구의 30%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하였음에도 에르도안의 지지율에 거의 변동이 없었음이 드러났듯이,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 그에 따라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누리는 혜택을 포기할 수 없는 보수 유권자들과, 현 정부의 극심한 부패상과 경제적/사회적 실정에 크게 실망한 진보·중도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이 극도로 갈리게 되어 현재로서는 어떤 이슈가 터져도 여론에 큰 변화가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볼 수 있다. 

결선투표 지역별 우세(주황색:에르도안 승리지역, 붉은색:클르츠다로울루 승리지역)

 결선 투표결과를 보면 도시와 개발된 해안 지역, 쿠르드인 이 다수 분포하고 있는 동남부는 클르츠다로울루, 보수적인 농촌과 내륙지방은 에르도안을 선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쿠르디스탄 문제가 존재한다. 터키 동남부에 분포하고 있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인 들은 역사적으로 터키인과 언어, 문화가 달라 끊임없이 독립을 내세우고 있는 분리주의적 집단이다. 쿠르드인을 국가의 안위에 해를 끼치는 유해, 테러리스트 집단이라 멸시하는 에르도안과 달리, 클르츠다로울루의 공화인민당은 쿠르드인들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그들의 독립을 주장하는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artiya Karkerên Kurdistan, PKK)을 지지하며 많은 튀르키예인에게서부터 부정적 눈초리를 샀다. 이렇게 중도와 전통을 중시한 구(舊) 공화인민당과는 다르게, 오늘의 CHP는 친 쿠르드, 친LGBT적인 입장을 취하며 되려 지지층을 약화하고 있다는 견해가 잇따르고 있는 상태이다. 


 이에 더해 선거유세 기간 동안 기도용 깔개를 신발을 신고 밟는 행동을 보이며 이슬람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며 더욱 악화된 클르츠다로울루의 지지율은 궁극적으로 공화인민당 패배를 초래하고 만다. 

이슬랑 기도용 깔개에 신발을 신고 올라간 클르츠다로울루

 강력한 야당을 제치고 또다시 5년이라는 시간을 쟁취한 에르도안은 당선된 지 채 1주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을 제한하고 이슬람주의적 정책을 실행하며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8년까지 에르도안의 집권이 확정된 가운데, 터키의 민주주의와 국민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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