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원
지난달, 매장 사정으로 인해 병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숨진 20대가 산재를 인정받았던 바 있다. 작년 2월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했던 A씨는 입원진료가 필요해 휴가를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교대 인원과 매장 사정으로 인해 이를 반려당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아파도 쉬지 못했기 때문에 A씨의 질병이 악화하여 결국 죽음까지 이르게 됐음을 인정하였다.
단순히 A씨가 근무했던 회사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프면 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구조가 이러한 상황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쉴 수 있는 권리’의 양극화 문제 등이 주목받으며 우리나라의 제도적 공백에 대한 논의가 차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전국 초등 돌봄 및 보육교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가나 병가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60%를 차지했다. 교사들은 아이들에 대한 돌봄 공백에도 우려를 표했지만,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해 쉽사리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제도적인 면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들 현실에서 그 제도의 활용이 어렵다면 실질적으로 노동자에게 더 도움이 될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병가제도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사업장도 많다. 고용노동부가 2020년에 발표한 병가제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업체 2,500곳 중 병가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은 21.4%뿐이었다. 즉, 10곳 중 8곳은 병가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병가제도 도입은 사업체의 규모에 따른 차이를 보였는데, 1,000인 이상인 사업장은 96.7%가 병가제도를 운영 중인 반면에 상시 노동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은 12.9%에 그쳤다. 쉴 권리의 양극화가 뚜렷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병가와 관련된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근로기준법상 명시되어 있는 휴가는 연차유급휴가(제60조), 생리휴가(제73조), 출산전후휴가(제74조)뿐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이다. 배우자 출산휴가(제18조의 2), 난임치료휴가(제18조의 3) 등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을 뿐 병가제도의 언급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병가제도가 보장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현재 병가제도는 전적으로 기업의 재량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앞선 사례처럼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제60조(연차 유급휴가)
① 사용자는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제73조(생리휴가)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
제74조(임산부의 보호)
①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출산 전과 출산 후를 통하여 90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12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주어야 한다. 이 경우 휴가 기간의 배정은 출산 후에 45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60일) 이상이 되어야 한다.
제18조의 2(배우자 출산휴가)
① 사업주는 근로자가 배우자의 출산을 이유로 휴가(이하 “배우자 출산휴가”라 한다)를 청구하는 경우에 10일의 휴가를 주어야 한다. 이 경우 사용한 휴가기간은 유급으로 한다.
제18조의 3(난임치료휴가)
① 사업주는 근로자가 인공수정 또는 체외수정 등 난임치료를 받기 위하여 휴가(이하 “난임치료휴가”라 한다)를 청구하는 경우에 연간 3일 이내의 휴가를 주어야 하며, 이 경우 최초 1일은 유급으로 한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2021년 기준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상병수당’이 갖춰지지 않은 나라는 한국, 미국뿐이다.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질병 등으로 인하여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중에도 소득을 보전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미국은 상병수당 제도는 갖춰지지 않았지만, 시장에 대한 공적 규제를 중심으로 병가 및 상병휴직 제도를 운용하는 반면에 한국에는 관련 규제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2022년 7월 4일, 보건복지부는 처음으로 상병수당 제도의 1단계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상병수당과 더불어 유급 병가제도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제도’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유급병가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상병수당 대기기간 동안 급여가 나오지 않는 것을 우려해 질병에도 불구하고 참고 일을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병수당 제도는 1단계 시범사업을 마무리한 후, 2단계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편 외국에서는 상병제도의 영향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지는 추세이다. 이는 혜택을 받는 인구와 혜택을 이용하여 부정한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인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함으로 보인다. 아직 한 발 이른 논의지만, 한국 내에서도 상병수당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성숙화되는 과정에서 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12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제시한 바 있다. 노동자 개인의 건강과 생산성 증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법적병가와 상병제도는 필수적이다. 노동자가 제도의 부재로 인하여 조기에 진료를 받지 못한 경우 의료 비용은 장기적으로 더 커질 위험성이 존재한다. 또 노동자가 아픔을 참고 일하는 경우에는 장·단기적으로 생산성이 감소하게 된다. 아픈데도 계속 일을 ‘하게 되는’ 노동자들의 문화를 일컫는 단어도 존재한다.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은 근로자가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여 업무의 성과가 떨어지고 생산성이 저하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고루한 문장이 떠오른다. 프리젠티즘은 아픈데도 불구하고 참고 일하는 것이 ‘미덕’이라 강요받는 한국 노동 문화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쉬지 못하는 사회가 이루어 낸 결과를 더 이상 바라만 보기 어려운 시점이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 문화에 뿌리 박힌 ‘당연함’부터 개선되어야만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건강한 노동문화가 필요하다. 그 첫걸음을 뗀 지금,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출처 및 참고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근로기준법(https://www.law.go.kr/법령/근로기준법)
국가법령정보센터,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https://www.law.go.kr/법령/남녀고용평등과일ㆍ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
국민건강보험, 상병수당 제도 (https://www.nhis.or.kr/nhis/policy/wbhaea03600m01.do)
김수진, 김기태.(2019).외국의 아픈 노동자는 회사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는가?.한국사회정책,26(1),3-33.
김근주.(2021).법정 병가제도 도입의 정책적 쟁점.한양법학,32(2),45-69.
박준용. (2022.07.03).저희 회사는 유급병가 안 되는데…‘상병수당’ 받을 수 있을까요?.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