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딸작가

by 모녀작가

나에게는 스위치가 있다. 좀 많다. 처음에는 하나였다. 그건 성악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음악 수업의 가창 시험 준비로 가곡 ‘봄처녀’를 연습해야 했다. 아빠는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 또 아마추어치고는 꽤 예쁜 미성으로 잘 부르는 편이라 오래전부터 성당 성가대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시험 준비는 아빠가 도와주었다.


“봄처녀 제 오시네~”

“아니 입을 더 오므리고 배에 힘을 줘야지.”

“보옴 처어녀 제에 오시네에~”

“그래그래, 공기를 더 멀리 보낸다 생각하고.”

“보오옴 처어어녀 제에에 오시네에에~~”


평소에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기 좋아해서 나도 노래는 꽤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아빠가 알려준 성악 발성 (그때는 주먹구구식 성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꽤 성악적인 발성을 잘 구사했다) 은 조금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하니 꽤 그럴싸한 노랫소리가 나왔다. 자신감에 찬 나는 가창 시험도 떨지 않고 무사히 치렀는데, 내 노래를 들은 선생님이 성악을 배운 적이 있냐고 물으며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때 나는 내가 성악에 소질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온갖 성악 영상을 찾아보고 책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성악 레슨을 시켜달라고 예고에 다니고 싶다고 음대에 가겠노라고 졸랐다. 부모님은 내 선택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고 소원대로 예고를 거쳐 나는 서울에 있는 음대 성악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스위치는 하나였다. 성악을 공부할 때는 ON 친구들과 놀 때는 잠시 OFF.


그런데 두 번째 스위치가 생긴 건 대학교 1학년이 조금 지날 무렵이었다. 뮤지컬을 봤다. 아니 사실 뮤지컬은 고등학생 때도 시간이 나면 영상으로 즐겨보고 가끔은 서울에 레슨을 받으러 가서 혼자 보고 오기도 했다. 그때는 단순히 음악의 또 다른 장르를 경험하는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어졌다. 성악과 오페라에 비해 화려한 무대 그리고 한국어로 하는 연기와 노래 그리고 춤. 이 모든 것은 성악 공부에 지쳐있는 나에게 너무나 자극적인 유혹이었고 나는 또다시 부모님께 뮤지컬을 배우겠노라, 학교를 휴학하겠노라 선언했다. 부모님은 이번에도 역시 나의 선택을 응원해 주셨다. 나는 음대를 다닐 때는 성악 스위치를 ON 해 두었다가 수업이 끝나고 뮤지컬 레슨을 받으러 갈 때는 뮤지컬 스위치를 ON 하기 바빴다. 그렇게 졸업 후 시립뮤지컬단에 들어가며 성악 스위치는 OFF 해 둔 채 본격적으로 뮤지컬배우의 스위치를 켜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은 참 간사하다. 아니 내가 끈기가 없는 것일까? 뮤지컬단도 회사였는지 마의 3년쯤 되니 딴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몸을 쓰는 건 좀 지쳐, 매일 무대 위에서 긴장하고 떠는 것도 힘들어.' 이런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나는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졌다.


그렇게 만난 것이 작사이다. 우연히 본 SNS 게시글에 누구나 작사가로 데뷔를 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았다. 평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던지라 음악을 전공한 내가 가사를 쓴다면 뭔가 더 쉽고 잘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작사학원을 등록했다. 생각만큼 작사는 쉽지 않았다. 정해진 글자 수 안에서 곡의 분위기에 맞춰 가사를 상상하여 짓는다는 것이 단순히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르게 복잡하고 섬세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작사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주었기에 뮤지컬단에서 퇴근하면 뮤지컬 스위치를 OFF 하고 작사 스위치를 ON 하기 바빴다. 그렇게 학원을 수료하고 얼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감사하게도 작사 데뷔곡을 낼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지는 않지만 매년 한두 곡씩 작사에 참여하여 곡을 발매하고 있다. 그렇게 3개의 스위치를 가지고 살아가던 중 결혼을 하고 순천으로 오게 되었다. 순천으로 내려오면서 서울에서 다니던 뮤지컬단은 퇴사하였다. 오히려 그때는 작사에만 전념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작사는 짝사랑 같은 일이라 내가 원한다고 다 곡이 발매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인즉 작사가 나에게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짝사랑에 조금 지쳐갔다. 매일 켜 둔 작사 스위치가 뜨겁게 과열된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오래전에 꺼두었던 성악 스위치를 매만졌다. 뽀얗게 먼지가 쌓인 스위치를 닦아내고 다시 성악 연습을 시작했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과 순천에서 성악팀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고 시립합창단에 들어가면서 안정적인 수입도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꺼둔 탓일까 가끔 스위치가 깜빡깜빡하지만, 열심히 가꿔주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 늦게나마 대학원도 들어갔다. 그렇게 대학원생 스위치가 성악 스위치 옆에 조그맣게 생겨났다. 지금도 나는 3개의 스위치를 달고 산다. 성악 스위치, 작사 스위치 그리고 대학원생 스위치까지.


그런 내게 또 슬금슬금 새로운 스위치가 등장하려 한다. 바로 글쓰기 스위치이다.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진다. 또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난다. 가사는 정해진 글자 수가 있지만 글은 내 마음대로 쓰면 된다. 그래서 가끔 작사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슬럼프가 다시 찾아올 것 같을 때는 단편소설을 쓰거나 에세이를 쓴다. 4개의 스위치는 많다는 것을 안다. 몸은 하나고 하루는 24시간이라는 사실은 변함없기에 분명 언젠가는 누전 사고가 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본디 욕심이 많은 성격인지라 나는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 하고야 만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4개의 스위치를 껐다 켠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문어발이라고 욕할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갓생을 산다고 칭찬할 수도 있다. 뭐든 상관없다. 그냥 이게 나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



keyword
이전 10화시절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