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를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동안 물질의 유혹에 눈이 멀어 교회와 성당에 양다리를 걸쳤던 ‘알바스천’이자 ‘나일론 신자’였던 죄를 지금부터 고백하려 합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갔던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예술고등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저에게 하루는 음악부장 선생님께서 교회에서 곧 있을 부활절에 칸칸타를 연주하는 데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때는 단순히 일회성이었고 학생이 특별한 이유 없이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힘들었기에 알겠다고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입시생인 저에게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생긴다는 것은 실전 경험을 익힐 소중한 기회였기에 감사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 교회는 노래하면 돈을 주는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다닐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던 교회는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오자, 본격적으로 저의 일상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은 거의 모든 교회에서 주말 예배의 성가대에 ‘솔리스트’라고 부르는 전공자들을 파트별로 한두 명씩 구합니다. 비전공자인 일반신도들로 이루어진 성가대는 아무래도 노래하는데 한계가 있다 보니 솔리스트들이 도움을 주며 함께 찬양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 당시 음대생들에게는 이 솔리스트가 웬만한 아르바이트보다 인기가 있었습니다. 주말에 교회에 가서 노래도 하고 예배도 드리며 심지어 돈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이삼십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아침 일찍 하는 1부 예배를 하고 다음 예배인 2부 예배까지, 소위 두 탕을 뛰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저와 같은 친구들도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교회에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친구들을 아르바이트와 크리스천을 합쳐서 ‘알바스천’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도 정말 열심히 알바스천 생활을 했습니다. 두 탕에 심지어 수요예배까지 세 탕을 뛴 적도 있었으니, 친구들 사이에서는 웬만한 기독교 친구들보다 교회를 많이 간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성당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유아세례를 받은 모태 천주교인입니다.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에 나가고 첫 영성체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성당 마당에서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큰 스크린으로 보며 응원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가서 레슨을 받아야 한다는 핑계로 성당을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울에 올라오자, 처음에는 주말에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우선이 되었고 그러다 조금씩 돈이 필요해지자 어느새 돈을 벌러 교회에 가는 것이 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는 천주교인인데 교회를 이렇게 다녀도 되나?’ 걱정하다가도 ‘하느님은 한 분이시니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도 퉁 쳐주시지 않을까?’라는 얕은 생각으로 스스로 합리화하였습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교회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성당의 기도문은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찬송가도 거의 비슷했기에 저는 장장 7년이라는 시간을 알바스천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나 자신이 교회의 돈을 탈취하기 위한 스파이 같다는 생각에 교회에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교회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가끔 힘이 들 때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목사님의 설교는 좋았습니다.
그런데요, 신부님 그래도 저는 어쩔 수 없이 천주교인인가 봅니다. 아니면 제가 교회에 간 목적이 너무 물질적이라서 그런 것이었을까요. 하루는 아는 언니가 저에게 ‘7년이나 교회를 다니는데도 은혜가 안 생기는 너도 참 신기하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머리가 띵했습니다. 내가 정말 돈만 생각하고 다니고 있구나. 아무리 돈이 중요해도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저에게도, 교회에도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에게 이건 못 할 짓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바로 알바스천을 관두었습니다.
그렇다고 성당을 나가냐고요? 아니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번 발길을 끊은 성당을 다시 다닌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특히 결혼해서 타지에 와버리니 더욱더 쉽지 않네요. 알아요. 핑계라는 거. 저도 제가 바라는 것은 많으면서 실천하지 않는 말 안 듣는 못된 어린양 이란 거. 성당도 안 가면서 밤마다 자기 전에 기도는 정말 열심히 해요. 하루도 안 빠진다니까요. 매일 저녁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주님. 그런데요, 내일은 더 좋은 일이 많게 해 주세요. 예를 들면…….’를 시작으로 온갖 제가 바라는 것들을 막 쏟아내요. 하느님이 들으면 정말 어이없으시겠다 그렇죠? ‘요안나야 성당이나 나오고 얘기해라.’라고 하실 거예요.
그래도 하느님은 참 관대하셔요. 제가 바라는 걸 들어주신다니까요. 비록 성당에 안 나오는 ‘나일론 신자’지만 하루하루 무사하도록 저를 지켜주신 느낌이 들어요. 저는 참, 사랑을 많이 받는 어린양 인가 봐요.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순탄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느님 덕분이라고요. 예전에는 ‘내가 잘해서, 내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 오만이었던 것 같아요. 살아보니 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저를 항상 옳은 길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려요. 제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좋은 신앙적 유산을 미래의 제 아이에게도 주고 싶어요. 그러면 우선, 제가 성당에 다시 잘 나가야겠죠? 휴……, 역시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도 노력해 볼게요. 이번에는 진짜예요! 어머 신부님 제가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뒤에 사람들도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