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불교 용어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다 때가 있다는 말처럼 들려 내겐 위로가 되는 단어이다. 살다 보면 시절 인연이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쿠키와의 만남이 그러했다.
쿠키는 우리 집 넷째 딸인 강아지이다. 쿠키를 키우기 전에는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외로운 사람이 개를 키운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편견이라는 것을 나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자식을 셋을 낳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에 외로울 틈이 없었다. 서로 인연이 닿으면 동물도 사람과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시작은 작은아들 때문이었다.
쿠키는 작은아들 친구네에서 분양받은 강아지이다. 강아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아들은 친구에게 새끼를 분양받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약속을 한 것이다.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아들은 친구 집에 매일 들락거렸다. 아들 친구도 부모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새끼를 준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이사 와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경상도에서 자란 아들은 충청도 아이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전에 다니던 학교로 전학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새로운 친구보다는 이사 오기 전에 사귀었던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그러던 아들이 강아지 때문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고 학교생활도 조금씩 적응하게 되었다. 학교 가기 싫어하던 아들이 강아지를 보기 위해서 등교하고 친구 집에 가면서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하루는 아들과 남편 둘이 산에 올랐다. 아들이 산길 초입에서부터 정상에 갈 때까지 강아지 키우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생각해 보겠다는 남편 대답에 아들은 정상에서 내려오는 내내 생각해 봤냐고 물었고 키우게 해달라고 통사정했단다. 남편은 기름에 볶이는 멸치처럼 아들한테 달달 볶였다. 머리가 멍해진 남편은 뒷일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허락해 버렸다.
우리 부부는 강아지에 대한 사전 지식 하나 없는 상태였다. 그냥 밥만 주면 되는 줄 알았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던 개처럼 만만하게 생각한 것이다. 시골마당 대신 집안에서 그냥 키우면 다 되는 줄 착각했다. 우리가 분양받은 강아지가 털이 끝도 없이 빠지는 포메라니안인 줄 몰랐다. 우리는 단순 무식했다. 자식이든 반려동물이든 미리 공부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요즘 말로 우리 부부는 옛날 사람이었다.
마냥 신난 아들을 앞세워 우리 부부는 강아지를 분양받으러 갔다. 사진으로 본 강아지는 우리가 원하던 암컷이 아니었다. 나는 소변 때문에 수컷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암컷인 다른 강아지를 데려오려고 했다. 그런 우리 때문에 친구 아버지도 당황했다. 우리가 데려오려는 강아지는 다른 사람과 얘기가 오가는 중이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암컷은 그 강아지뿐이었다. 상황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던 아들은 강아지를 품에 안았고 아들 친구는 데려가라고 허락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머쓱해졌고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남편은 분양비와 선물을 주고 왔다. 집사람이 알면 안 된다고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주인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강아지를 데리고 나왔다. 잘 키우겠다고 약속하고 데리고 온 강아지가 쿠키이다.
이번 생에서 내가 가장 잘한 것은 그날 빼앗다시피 하며 쿠키를 데려온 것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바람에 노년의 어머니를 품을 수 있었다. 강아지의 똥을 자연스럽게 치우게 되니 어머니의 똥을 치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스스로 치우지 못하면 본 사람이 치우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강아지를 품에 안게 되니 걷지 못하는 어머니를 업는 것 또한 할 수 있었다. 강아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부모이기에 내가 손발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졌다. 쿠키가 우리 집에 온 것이 마치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온 선물 같았다. 쿠키 덕분에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