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책 놀이를 하는 사람이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고 놀이 활동을 하는 게 내 일이다. 수업을 위해 미리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내가 만든 견본품을 보고 아이들이 더 잘 놀기를 바라며 종이컵에 물감을 발랐다. 검푸른 밤하늘에 달과 별을 그렸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살짝 흉내 내 보았다. 다 그린 그림을 보니 저 멀리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어느 겨울밤이 생각났다.
그날은 지방 소도시에 살던 우리 가족이 어머니를 뵈러 서울 동서네를 간 날이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서울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동서네 부부와 함께 밤공기를 마시며 외출을 했다. 성탄 분위기로 서울의 풍경은 별이 빛나는 밤처럼 화려했다. 코엑스에 있는 영화관에 간 우리는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냥 집으로 갈 수는 없어서 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역시 서울에 있는 서점은 크고 넓었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3살인 막내아들만 내 옆에서 책을 구경하고 있었다.
막내가 그림책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새 책 위에 견본책이 여러 권 펼쳐져 있었다. 아들은 재미있는지 한참을 구경했다. 남편과 큰애들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려고 할 때였다. 막내아들이 보던 책을 사달라고 말했다. 책 구경하고 집에 갈 때 사주겠다고 얘기했다. 혹시나 먼저 샀다가 마음이 변해서 다른 책을 사겠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서점을 나갈 때 사자고 달랬다.
그 말에 실망한 아들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깜짝 놀란 나는 아들을 달래며 주변을 살폈다. 조용한 서점에 아들의 울음소리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막내는 작은 손에 쥐고 있던 그림책을 품에 안고 울었다. 뺏기지 않으려고 소리를 더 크게 내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동서네와 우리 가족을 모두 불러 모았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때부터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다.
결국 아들 품에 있던 책을 사주었다. 그것도 견본으로 내놓은 책을 새 책값을 주고 샀다. 아들이 원한 책은 여러 명이 만져서 그림책 한 장 한 장이 잘 펼쳐지는 견본품이었다.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우는 아이를 빨리 데리고 나오려면 그 책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견본책을 사겠다는 나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계산하던 직원만큼이나 나도 어이가 없었다. 표지에 붙은 ‘견본’ 글자가 노랗게 빛나던 그 책을 손에 든 아들만 유일하게 웃고 있었다. 막내를 업고 동서네로 걸어가던 그 겨울 밤하늘에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 하늘의 별만큼 나는 생각에 생각을 더했다. 아들의 고집을, 내가 한 행동이 옳은 것인가를. 내 등에서 잠든 아들의 고른 숨소리를 느끼며 스스로 나를 위로했던 그 밤이 불현듯 생각났다. 이젠 추억이 된 그 일이 내 마음에 별빛처럼 빛나고 있다.
그런 막내아들이 지금은 이십 대 청년이 되었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나니 어린아이들이 더 예쁘게 보인다. 내가 만든 견본품을 보고 따라 그릴 아이들을 생각하니 벌써 보고 싶어진다. 수업 때의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빛이 별빛보다 더 반짝거린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빛나는 별을 만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