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딸작가

by 모녀작가

‘딸은 아빠를 닮는다.’ 나는 이 말을 증명하듯 아빠를 닮았다. 가장 눈에 띄게 닮은 것은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빠는 예쁜 목소리를 가졌다. 예전에 팝페라 가수 ‘임형주’의 목소리를 처음 듣고 아빠의 목소리와 굉장히 비슷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만큼 아빠는 타고난 목소리도 예쁘고 노래도 잘한다. 그래서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성악과에 가고 싶었다고. 그러나 집안 형편이 되지 않아 그 꿈을 포기하고 일찍 취직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런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성악을 전공했다. 나에게 처음 노래를 가르쳐 준 사람도, 내가 성악을 전공해 예술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내 편을 들어준 사람도 바로 아빠다. 아빠는 자신과 꿈이 닮은 딸이 집안 형편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며 열심히 내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대신 아빠는 성당 성가대를 열심히 다니는 것으로 못다 이룬 음악의 꿈을 채워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와 아빠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 두 사람이 가장 많이 닮은 것은 바로 성격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빠는 무척 꼼꼼하다. 어느 정도냐면 어릴 때 가족끼리 여행을 가려하면 아빠가 가스 점검을 시작으로 온갖 창문 단속, 문단속을 몇 번이고 하는 탓에 온 가족이 출발 전부터 기다리다 지쳐버리곤 했다. 겨우 차에 타고나서도 “내가 문을 확실하게 잠갔나? 아까 손잡이를 돌렸을 때 살짝 흔들리지 않았어?”라고 하며 다시 확인하러 집으로 올라가 엄마와 싸운 적도 있다. 그런 아빠의 수고를 덜어주려 했던 건지, 아니면 내가 분업을 해주면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할 것 같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부터인가 나는 아빠를 도와 집안의 온갖 단속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를 뛰어넘어 더 심하게 모든 것을 재차 확인하는 내가 되었다.


또 아빠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꼼꼼하게 상태를 따져보고 가격을 수없이 비교해 보고 나서야 겨우 산다. 나는 이것도 아빠를 참 많이 닮았다. 쉽게 물건을 사는 법이 없다. 요모조모 따져보고 합리적인 소비라는 생각이 들어야만 구매를 결정한다. 재밌는 것은 예전에 아빠와 내가 함께 핸드폰을 바꾸러 나간 적이 있다. 엄마는 집을 나서는 우리 둘을 보고 제발 그냥 돌아오지 말고 오늘은 꼭 핸드폰을 사서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다 우리는 벌써 며칠째 둘러보기만 하고 핸드폰을 사지 못하고 있었다. 꼼꼼하게 따져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녀가 만났으니 핸드폰 하나 구매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슬프게도 그날 역시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딸은 갈수록 엄마를 닮는다.’ 나는 이 말 역시 틀린 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 엄마는 글을 쓴다. 엄마가 처음 글을 쓴 것은 내가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엄마는 그날 동네 문화센터에 발 마사지 강좌를 등록하러 간다고 했다. 그때 한창 엄마가 발 마사지에 빠져있어 나와 동생의 발을 주물러 줬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마사지를 해주면 잠이 솔솔 오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엄마가 발 마사지를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엄마는 뜬금없이 수필 수업을 등록하고 왔다. 발 마사지는 인기 강좌라 일찍 인원이 다 차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찰나의 우연이 엄마를 수필가의 길로 이끌었다. 이후 엄마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어떨 때는 끼니도 거르며 타자기를 쳤다. 밤늦게까지 글을 고치고 고쳤다. 처음에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글쓰기는 학교에서 내주는 귀찮은 과제일 뿐이었던 나에게 밥을 거르면서까지 글을 쓰는 엄마는 무슨 재미로 저러는지, 마치 딴 세상 사람 같았다.


그런데 요즘 내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밤새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가끔은 정말 배도 안 고플 정도로 집중을 한 탓에 하루 종일 굶기도 한다. 그때의 엄마가 무슨 재미로 글을 쓰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는 그렇게 글을 써서 상을 받기 시작하더니 책을 출판한 어엿한 작가님이 되었다. 과거 엄마가 나에게 글을 읽고 감상평을 해달라고 했을 때는 사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재밌어.”, “잘 읽혀.” 정도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칭찬이었다. 나는 글쓰기에 관심이 없었기에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엄마의 글을 보면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여기는 이래서 좋고 저기는 이런 표현이 참 인상적이라고. 어느새 나와 엄마는 함께 글을 쓰는 동료가 되어간다. 아마 내가 가사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작사도 글자를 다루는 작업이다 보니 막막할 때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나의 가려웠던 부분을 긁어주는 해답을 주기도 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각을 전환할 수 있는 단서를 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엄마와 다른 작업도 함께하고 싶어 졌고, 그렇게 내가 활동하는 팀의 연주를 위한 극본이나 오페라 대본을 같이 쓰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에게 좋은 글쓰기 선배이자 선생님이다. 내가 ‘이런 거 저런 거를 쓰고 싶어.’라고 말하면 엄마는 뚝딱 글을 만들어 준다. 그러니 점점 엄마와 함께 글을 쓰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오랜만에 당진으로 내려가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책을 내자!’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어디에 홀린 것처럼 갑자기 계획이 후루룩 짜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그날부터 엄마와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와 함께하면 못 할 것도 없다 느껴졌다. 이 책이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되든 그 과정이 이미 즐거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이 책의 여정은 순식간에 시작되었다. 한참 열중해서 글을 쓰다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근데 책 제목은 뭐로 하지?”

엄마가 고민하다 대답했다.

“데칼코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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