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간 소음

딸작가

by 모녀작가

그 집은 내가 혼자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이었다. 회기역에서 조금 걷다 보면 나오는 경희대학교 정문을 향하는 삼거리에 위치한 상가 위에 있던 원룸. 접근성 편한 위치는 물론, 다른 집들에 비해 눈에 띄게 넓은 평수와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서 나는 그곳에 두 번째 자취방을 꾸렸다. 대부분의 원룸이 그러하듯 이 집 역시 층간소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전에 살았던 신축 오피스텔에 비하면 소음이 덜한 편이었다. 윗집은 사람이 안 사는 것처럼 조용했다. 가끔 물건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리면 ‘아 사람이 있구나’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2년을 만족하며 지냈다. 그 중국인 유학생이 이사 오기 전까지는.


어느 날 옆집이 새로 이사 왔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옆집에 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얼핏 보이는 문 너머로 채 정리하지 못한 이삿짐 박스들이 쌓여있었다. 남의 집을 대놓고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황급히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하루 종일 전화 통화를 하며 짐을 정리하는 옆집의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왔다. 그랬다 이 집의 문제는 층간 소음이 아니었다. 벽간 소음이었다. 그전에는 옆집에 자매가 살았는데, 둘 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들어와서 그런지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웬걸 옆집 남자의 중국말소리가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집안으로 너무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사 온 첫날이니 늦게까지 시끄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소음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하루는 집들이하는지 중국인 친구들을 잔뜩 데려와 밤새 떠들고 놀기 시작했다. 밤 열두 시에도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놀자, 짜증이 난 나는 고민하다 옆집과 연결된 벽을 소심히 두드렸다. 소음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 무반응에 갑자기 화가 솟구친 나는 주먹으로 벽을 쿵쿵쿵 두드렸다. 옆집이 멈칫하는 느낌이 들었다. 주먹이 얼얼했지만, 나의 불편한 심기가 잘 전달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소음은 몇 달간 계속되었다. 수면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참지 못한 나는 귀마개를 샀다. 스티로폼으로 된 귀마개를 꽂아 넣으니 고요함이 몰려왔다. 이거면 됐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한번 귓구멍으로 중국말이 들려왔다. 귀마개는 소용이 없었다. 그저 소음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며 겨우 잠드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낮에 계단에서 옆집을 마주할 때면 반갑게 인사하기는커녕 눈을 흘기게 되었다. 그렇게 참고 견디며 살아가던 어느 날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전날 공연으로 무척 피곤하던 나는 그날은 꼭 늦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데 아침 6시부터 옆집에서 미친 듯이 큰 음악 소리가 들렸다. 여자 친구도 왔는지 두 남녀의 웃고 떠드는 소리와 알 수 없는 중국음악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깼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벽을 또다시 주먹으로 쿵쿵쿵 두드렸다. 잠시 주춤하던 소음은 이만하면 눈치를 다 봤다 싶은 건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제자리로 돌아간 볼륨에 기가 막힌 나는 처음으로 옆집을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대충 외투를 걸쳐 입고 나가 옆집 벨을 눌렀다. 딩동. 반응이 없었다. 똑똑똑. 음악 소리가 멈췄다. 똑똑똑. 그제야 문이 열렸다. 잠옷 차림의 키가 큰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화가 나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누르며 나는 옆집인데 아침 일찍부터 너무 시끄러우니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 나름대로는 쏘아붙이지 않고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남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뭔가 억울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다 알겠다고 미안하다며 어설픈 한국말로 대답했다. 그렇게 상황은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주인집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주머니는 내게 옆집 사는 남자는 한국으로 유학 온 중국인 유학생인데 안 그래도 외로운 타국살이에 옆집이 자꾸 벽을 두드리고 시끄럽다고 찾아온다며 너무 힘들다고 울면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피해자는 나인데 가해자가 피해자 노릇이라니. 나도 아주머니에게 그동안 소음으로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해들을 토해내듯 말했다. 아주머니는 양쪽의 입장을 다 이해하나 그래도 한국인인 내가 좀 더 이해하고 사과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람이 너무 어이없고 황당하면 이렇게 몸이 떨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하지만 나는 세입자였기에 주인집 아주머니의 황당한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생각해 보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고립되었다. 집에 덩그러니 앉아서 마주한 공기가 너무 차가웠다. 적반하장인 옆집과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아주머니가 내가 온전히 소유하던 집의 따스함을 빼앗아 간 느낌이었다. 그 순간 집이 너무 싫어졌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포근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울의 삶이 갑자기 확 고달파졌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다. 고향 집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그 순간 옆집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방에서 서울로 온 나도 이렇게 사소한 것에 마음이 무너지고 힘든데 다른 나라로 온 그 친구는 얼마나 더 고달플까. 그래서 더 음악을 크게 틀고 친구들을 자주 초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소음을 정당화해 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넘어가기에는 좀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내가 벽을 치고 집을 찾아간 것은 사실이기에.


그래서 마트에서 초콜릿 과자 한 상자를 샀다. 그리고 메모를 붙여 옆집 문고리에 걸어두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사과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로서의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메모에는 ‘갑자기 집을 찾아간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참다못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금 조심히 해주길 바란다. 나 역시도 예민하게 굴지 않으려 노력해 보겠다. 유학 와서 힘들 거라 생각한다. 나도 서울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아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는 이웃끼리 도우며 잘 지내보고 싶다.’고 적었다. 중국인 유학생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진심은 잘 전해지길 바랐다.


그리고 다음 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데 우리 집 문고리에 쇼핑백이 걸려있었다. 옆집이었다. 중국 과자와 음료수와 함께 역시 메모가 붙어있었다. 메모에는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조심하겠다. 먼저 사과해 줘서 고맙다. 이것은 중국에서 유명한 과자와 음료수이다. 맛있게 먹길 바란다.’라고 조금은 번역기를 돌린 티가 나는 어색한 문장들이 적혀있었다. 그 순간 마음의 벽이 녹아내렸다. 벽 너머에 소음을 내던 악마 같던 옆집 남자가 나와 같이 타지에서 열심히 생활하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자, 집이 다시 포근해졌다. 아늑함과 따스함이 밀려왔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집이지.


서른두 살이 되어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갔다. 첫 수업에 가자, 몇몇 중국인 유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자 옆집에 살던 그 남학생이 떠올랐다. 지금은 중국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여전히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을까? 그때 들려오던 중국말이 다시 귓가에 들려온다. 하지만 이제는 소음이 아닌 추억이 되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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