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머리

딸작가

by 모녀작가

앞머리를 자를까 말까?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하는 고민이다. 그것도 보통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쯤. 여름 내내 이마를 타고 흐르던 땀은 감히 앞머리를 내릴 생각도 못 하게 했지만 조금씩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나를 유혹한다. ‘어때 지금 헤어스타일 좀 지겹지 않아?’


헤어스타일을 바꾸기를 좋아하는 나는 20대 내내 틈만 나면 미용실을 들락날락했다. 하루는 갑자기 특별한 색으로 염색을 하고 싶어져 새빨간 머리를 하고 나타나기도 했고, 인생에 한 번쯤은 탈색을 해봐야지 않겠냐며 금발로 탈색을 한 적도 있다. 파마는 또 어떤가. 뽀글뽀글한 히피 파마, 굵은 웨이브 파마 등 각종 굵기의 파마에 도전해 봤다. 그간의 도전 결과 나는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파마가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파마가 지겨워지면 다시 긴 스트레이트 생머리로 돌아가기를 무수히 반복했고, 긴 머리를 단발에서 더 과감히 쇼트커트로 자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내 머리카락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 아닌 고생을 했지만, 매번 미용실에 갈 때마다 ‘머릿결이 상하긴 했는데 스타일이 안 나오지는 않을 거 같아요. 일단 진행해 보죠.’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특별히 머릿결을 관리하는 편이 아닌데 타고나길 튼튼한 모질인 것에 부모님께 감사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화려했던 시절도 점점 30대가 될수록 시들해졌다. 예전에는 헤어스타일 하나로도 기분 전환이 되고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헤어스타일로 기분을 바꾸기에는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었다. 또 예전에는 엄마 카드로 신나게 미용실을 다녔지만 이제 내가 벌어 쓰려니 (또 물가가 예전보다 많이 올라 미용실 가격도 굉장히 비싸졌다) 머리에 돈을 많이 쓰는 것은 부담이고 아까워졌다. 그래서 헤어스타일은 단발에서 점점 긴 생머리로 굳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기분전환이 바로 앞머리를 자르냐 마냐 하는 것이다. 앞머리 역시도 무수한 헤어스타일 역사를 함께 하듯 있었다 없었다가를 반복했다. 막상 자르면 매번 조금씩 자랄 때마다 관리를 해줘야 하는 게 귀찮아져 다시 길러 없앴고, 또 없애면 없앤 대로 아쉬워 다시 자르기를 반복했다. 생각해 보면 앞머리를 자를지 말지 선택하기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잘라서 안 어울리면 다시 기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왜 매번 이토록 고민이 되어 일주일 내내 뒷머리를 끌어당겨 가짜 앞머리를 만들어서 어울리나 안 어울리나 상상을 해보는지 모르겠다. 또 앞머리 하나 자르는데 주변 사람 10명의 의견이 필요하다. 누군가 자르라고 하면 ‘근데 앞머리 내리고 이마에 뾰루지 나면 어떡해.’라고 반박하고 누군가가 자르지 말라고 하면 ‘근데 지금 내 헤어스타일이 좀 지겹지 않아?’라고 답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러면 어쩌라고. 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거 아냐?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한 목소리로 짜증을 낸다.


인생에도 앞머리 자르기와 같이 사소한 결정을 하지 못해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도 꽤 많이. ‘오늘 저녁을 뭘 먹지’나 ‘다음 달에 헬스를 계속할지 말지’ 같은 일상적인 부분부터 ‘이번에 들어온 그 일을 할까 말까?’와 같은 직업적인 것까지. 앞머리처럼 잘라버리고 마음이 변하면 다시 기르면 그만인 선택들도 있지만 한번 자르고 나면 영원히 자라지 않는 머리카락처럼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좀 더 지혜로웠으면 좋겠다. 항상 최고의 선택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이 가장 원하는 것을 내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변인들에게 의견을 물을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도 있기에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사람들이 앞머리를 고민하는 내게 말하는 것처럼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최고의 선택이었고 어느 땐 최악의 선택인 순간들이 있었다. 인생의 수많은 앞머리 같은 고민 앞에서 망설이는 나를 위해 오늘보다 조금 더 현명해지길……. 나중에 떠올려 봤을 때 ‘그래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하길 잘했어’라고 나를 칭찬할 수 있는 순간들이 갈수록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keyword
이전 06화데칼코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