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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Sep 04. 2024

어쩌면 행복

13화

바프가 끝나니 긴장도 풀리고 목적지 없이 떠도는 느낌이 들었다. 공허함이 익숙하긴 했지만 일부러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다음 목적지가 필요했다. 눈치도 없이 진지할 때 배가 꼬르륵 거리며 밥때를 알렸다. 지독한 식단을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애써 만든 몸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아서 운동과 식단은 꾸준히 하기로 했다. 간단히 즉석밥과 닭가슴살을 데우고 냉장고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는 김치와 멸치 등을 꺼냈다. 혹자는 그거 먹고 힘이 나냐는 둥 묻지만 모르는 소리다. 꽤 균형 잡힌 식사인걸.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젓가락을 집어드는데 스마트폰에 알림이 울렸다. 단 한 번도 울린 적 없던 블로그 알림이었다. 무슨 일이가 싶어 입에 닭가슴살을 오물거리면서 알림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빛나리님 글을 읽다 보니 제가 찾는 분인 것 같아서 댓글 남깁니다. 저와 함께 일 해보지 않겠어요? 자세한 얘기는 이메일로 남겨두겠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껌뻑거리다가 최근 스팸성 알바 추천이 유행이라던데 나한테도 이런 일이 있구나 싶어서 콧방귀를 뀌고는 스마트폰을 다시 내려놨다. 밥 먹던 흥이 깨진 것 같아 기분이 살짝 센티해졌지만 입 안에 남아 있던 음식을 다시 씹으면서 나아졌다. 식단을 하면서 식사를 천천히 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러려면 오래 씹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꽤나 귀찮고 잘 되지 않았는데, 두 달 정도 지나니 완전히 익숙해져서 이제는 빨리 먹기가 힘들어졌다. 오래 씹다 보면 음식의 맛이 꽤 오래 지속된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가장 맛있는 건 첫 입이다. 그보다 맛있지는 않다.


적은 양이지만 오랜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스마트폰의 알림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또 뭐야? 하면서 들어 보니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이메일을 보낼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려는데 아까 왔던 블로그 알림이 떠올랐다.


'어? 진짜야?'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던 사람이 보낸 메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름출판사의 편집부장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빛나리님의 블로그에 글을 읽어 보고 책으로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연락드렸어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분의 이야기를 찾고 있었는데 빛나리님의 글이 적합한 것 같아서 함께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직접 만나서 일 얘기를 드릴까 하는데 빠른 시일 내에 만났으면 합니다. 원하시는 장소와 시간을 대략 알려주시면 제가 일정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연락 기다릴게요.


내가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 빛나리였다. 내 남은 인생이 빛나길 바라는 마음과 내가 좋아하는 개나리 꽃에서 이름을 빌려 정한 닉네임이다. 출판사 이름을 인터넷에 급히 찾아보니 대형 출판사는 아니지만 최근 베스트셀러도 출판한 곳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이메일을 몇 번씩 다시 읽었다. 그러다가 생각을 정한 듯 자세를 바로 고쳐 잡고 스마트폰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말로 운을 뗀 글은 언제, 어디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메일 발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는 침대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이게 무슨 일이야... 사기꾼인가...?'


가슴이 콩닥거리는 게 느껴졌다. 꿈인가 생시인가. 꿈이라도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메일을 회신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다시 이메일 알림이 울렸다. 편집부장이었다. 내가 제안한 일정과 장소에 응하겠다는 내용과 근처에 자기가 잘 아는 브런치 카페가 있으니 거기서 브런치 함께하면서 얘기 나누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식단을 유지하고 있는 나를 배려하는 것 같아서 흔쾌히 응했다.


막상 약속을 잡으니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기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사기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만나러 가는 순간까지 이 느낌을 맘껏 느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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