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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크루즈에서 만남

이야기, 열

by 방자

오늘은 비와 산타크루즈에 가기로 했다. 집 앞 테라스에서 멀찍이 보이는 언덕 꼭대기의 요새. 오랑 최고의 관광 명소라고 했다. 완님은 택시를 타고 가면 된다고 택시 잡는 팁을 알려 줬지만 우리는 배낭 여행자답게 걸어갈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말 못 하는 여행객으로서 치러야 할 가격 흥정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구글 맵으로 5Km. 언덕길이긴 하지만 뭐, 걷다 보면 도착할 거리이다. 시내 구경도 하고 방황도 하고, 길거리 선인장 열매도 사 먹으며(벌써 몇 차례 간식으로 사 먹은 적 있는 이 선인장 열매는 길에서 개당 10 디나르에 파는데 수북이 쌓인 선인장 열매 중 하나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깎아준다. 한국의 백년초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색은 다르고, 알제리 사람들의 주된 간식인지 길에서 파는 사람도, 사 먹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언덕을 오르는 주 도로에 들어섰다. 시내 외각, 허름한 빌딩과 수북한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를 지난다. 인도 생각이 났다. 이 곳의 쓰레기 시스템은 어떨까? 여기도 분리수거를 하지 않던데..


산 중턱에 올라서자 한눈에 보이는 시내의 풍경이 장관이다. 햇빛은 등이 따가울 정도로 센데, 바람은 닭살이 돋을 정도로 선선하다. 막상 이러고 보니 내 옆에 걸어가는 차도르(얼굴만 빼고 전신을 가진 이슬람 여성 복장, 참고로 히잡은 얼굴만 내어 놓은 머리 두건임)를 입은 아주머니의 복장이 나보다 이 곳 날씨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누가 봐도 외지인. 그런 우리에게 건네는 그들의 환대는 내가 십 수년전 필리핀 외각을 갔을 때와 한류 붐 시절 대만 여행을 할 때 이후엔 받아보지 못한 것이다. 어떤 아저씨가 나를 잡고 뭐라 뭐라 말한다. 그냥 인사가 아니라 용무가 있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는 아랍어와 불어로 뭔가 설명하고 나는 영어로 못 알아듣는다고 말해보지만 그는 내 말을 못 알아듣고. 가던 길을 가려했지만 쉬이 보내주지 않아 그 대화에 동네 아주머니들 몇 분이 가세한다. 나를 둘러싸고 열심히 설명을 하다 내가 바보같이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자 자기들끼리 계속 이야기를 한다. 느낌에는 아주머니들이 아저씨한테 네 일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던 길을 마저 가려고 돌아서 걷기 시작했는데 아저씨가 차에 타란다. 원래는 그 얘기는 아니었던 거 같지만, 산타크루즈에 데려다 주실건가 싶며 앞서 가던 비를 불러 함께 차에 올랐다. 그렇게 차를 얻어 타고 한참을 올라가니 산타크루즈가 나왔다. '아. 저 이야기였구나' 아저씨가 가리킨 곳에 공사 중인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나사를 돌리는 것 같던 그 제스처, 눈을 가리키며 아니라고 했던 그거 아마도 지금은 공사 중이라 그렇게 고생스럽게 올라가도 볼 게 없다는 뜻이었다보다. 고맙단 인사를 하고 내려 낮은 언덕배기를 올라 요새에 도착했다. 앗, 묻이 닫혀있다. 오늘 문 안 여는 날인 건가?(그 아저씨 말이 이 이야기였나 싶기도 했다) 잠시 후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슬람 복장을 한 젊은 여성 몇이 다가와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묻는다. 오늘 문을 닫았고 여름 내내 공사 때문에 닫혀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옆에 쓰여있는 글도 번역해 줬는데,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고 19세기 프렌치 사람들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이건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오랑은 해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프랑스 식민이 끝나고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모두 철수했을 때 프랑스 해군 일부가 끝까지 남아 있던 지역이라고 한다. 문이 닫혔어도 그 밑으로 보이는 지중해의 탁 트인 푸른 바다와 도시 전경만으로 충분히 방문 가치가 있는 산타크루즈를 뒤로 한 채, 다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아까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탄 곳을 지나 언덕 밑 산동네 마을 초입쯤 왔을 때, 누가 나를 부른다. '저요?' '응. 자네 이리와 봐.' 경찰이다. 두근두근. 저 경찰이 나를 왜 보자는 것일까? 혹여 내 비자를 보자고 하면 어쩌지? 나는 앞서가던 비를 불러 세웠고, 우리는 함께 경찰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그는 우리가 아랍어도 불어도 한마디도 못한다는 사실에 흠칫한 느낌이었다(나는 경찰이 나를 불러서 흠칫했고). 이런 애들이 자기들끼리 돌아다니는 게 의아한 한 모양이다. 초소로 보이는 곳에 있던 다른 아저씨 이야기를 나눈 뒤 그 다른 아저씨가 우리에게 더듬더듬 영어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우리는 한국인이고, 이 곳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방문차 이곳에 왔고, 오늘은 둘이 산타크루즈에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차가 없냐며, 우리가 가려던 그 길은 위험지역이라고 차 타고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우리 아까 거기 지나서 걸어왔어요. 귀여운 아이들하고 사진도 찍었는 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찔리는 게 있어 그냥 두었다. 택시를 불러 줄 수 있냐고 묻자, 이 동네 택시가 없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경찰 셋이 탄 경찰차 한대가 왔고 우리는 그 차를 얻어 타고 집 앞까지 쉽게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산타크루즈에서 알제리의 다양한 친절을 만나고 왔다. 알제리, 아직 정이 있는 나라인 듯.


<표지 사진 : 산타크루즈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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