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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열셋

by 방자

오랑에 머문 일주일 동안, 산타크루즈, 천사 동상이 있는 중앙광장, 바다, 공원, 그랜드 모스크, 기차역, 가장 큰 시장, 비치(옆 동네) 등 구글 맵에 마크가 되어있는 대부분의 장소에는 가 봤으므로 나로선 소위 오랑 관광이라 할 만한 것은 다 한 셈이다. 사실, 그 장소들은 특별히 실망스럽진 않았지만 아직까지 봐 온 파리의 에펠탑이나 베를린의 마우너 파크, 상뜨의 예르미타주 박물관, 발리의 바다에 비하여 특별히 멋있거나 아름답다고 하긴 어렵다. 프랑스식 건물과 정원 양식들은 내게 아프리카 같지 않은 세련됨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낸 식민 역사의 가장 큰 표면으로 다가와 보는 내내 생각만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랑에서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건 바로 늘 주변 어딘가에서 우릴 지켜보며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오랑에서 만난 나에게 특별한 인상을 심어 준 특별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에 대한 단편적 글이다.


모스크 가는 길 트램 검표의 진실


나는 비와 함께 두 번째 모스크로 향하던 날, 트램 검표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검표기에 티켓을 넣던 그 순간, 수많은 눈이 나를 쳐다봤던 그 이유 말이다. 지난번처럼 160 디나르를 내고 왕복 티켓으로 표 4장을 달라고 한 나는 손만 간신히 보이는 작은 문 사이에서 ‘찰칵, 찰칵, 찰칵, 찰칵’하는 네 번의 검표(Validate하는)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받아 든 표에는 시간이 찍혀있었다(지난번엔 못 봤음). '엇, 뭐지? 두 갠 올 때 쓸 건데?’ 하는 순간. 앗차 싶은 지난번 트램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트램에 올라 검표기에 표를 넣는 순간 모두가 나를 쳐다봤던 이유(나는 검표기에 표 넣는 다른 사람을 보진 못했다. 그저 유럽과 매우 흡사한 트램과 검표기가 있어 표를 사고 타서 스스로 검표하는 같은 방식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다). 여기선 표 파는 사람이 검표를 해주기 때문에 검표 기계가 트램 안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사용하진 않았던 것이다. '아, 그래서였어.’ 실은 엊그제, 돌아오는 길에 주머니에서 새 티켓을 찾아봤지만 헌(검표된) 티켓밖에 없어 나는 그냥 트램에 올랐다( 따지자면 무임승차). 그땐 덜렁대는 내가 실수로 새 티켓을 버리고 헌 티켓을 남겨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둘 다 검표된 티켓이었던 것이다. 나는 알게 된 진실을 비에게 열심히 떠들며, 이러다 오는 길에도 무임승차가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진짜로 모스크에서 돌아오는 길 2시간 전 검표된 티켓 네 개를 들고 탔는데 표를 체크하는 아저씨와 (첫날 혼자 탔을 땐, 모스크 가는 길에만 만나 별 문제가 없었음) 맞닥드리게 되었다. 그는 우리 티켓이 유효하지 않다고 했고, 나는 몸을 써가며 나의 실수를 설명했지만 그런 소통이 가능했다면 내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검표원은 씩 웃으며, 괜찮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우리에게 벌금 티켓을 끊어줬고, 우리는 무임승차 벌금 200 디나르(일인당 100 디나르)를 낼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무임승차한 외국인이 안타깝다는 듯 쳐다본다. 하아.. 슬프다. 그래도 여기가 무임승차 벌금이 벌금이 요금의 2~30배가 되는 독일이나 핀란드가 아니라 딱 2.5배인 알제리여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금으로 160유로를 내야 했다면 밤에 잠이 안 왔을 거다.


기차역에서 받은 카메라 세례


그가 잠든 새(밤에 일하고 낮에 잠), 나는 또 홀로 동네 마실을 나왔다. 이제 슬슬 동네가 눈에 익고, 사람들의 인사도 친숙하다. 바쁠 일도 별로 없는 삶에서 알면 아니까 반갑게 인사, 모르면 알면 좋으니까 새롭게 인사가 이 곳의 삶의 방식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틀 후면 알제로 돌아갈 예정이라 오늘은 기차 시간과 가격을 알아보러 기차역에 가보기로 했다. 완님이 합승택시 타는 곳과 가격을 알려주셨기에(그랜드 모스크 건너편에서 타면 되고 둘이서 3 좌석을 예매하면, 차가 3인용 2줄로 6인 승합차로 1인 가격 1200 디나르. 3 자리하면 3600 디나르, 조금 편하게 올 수 있을 거라고 하심) 택시를 타고 가도 되지만, 기차를 타고 가도 나쁘지 않을 테니 그저 알아나 보자는 심산이었다. 기차역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시간(오전 8시, 12시 반, 오후 3시)과 가격(가격은 1등석 가격밖에 알아내지 못함. 1200 디나르)을 알아내고 돌아오려는 찰나, 정차되어 있던 버스 뒤에서 어떤 남자애가 나한테 사진을 찍자고 한다. 뭐, 사진 한 장 찍어주는 게 어려운 일이겠냐 싶어 선뜻 옆에서 포즈를 취하니 왠 걸.. 애들이 하나 둘 버스에서 내리더니 '나도', '나도' 하는 바람에 몇십 장의 사진을 찍게 되었다. 낯선 남자애들과 1대 1, 1대 다로.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한차례 카메라 세례가 끝나고 나서야 아이들이 내게 묻는다? ‘친?' ‘자폰?’ 푸핫. 나는 ‘코리'라고 대답했다. 내가 누군지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일단 사진부터 찍고 보자는 그게 무슨 심리인지 알진 못하겠지만 한바탕 애들 소동에 실컷 웃었다. 그런데, 피부색이 각기 다른 너희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거니? 무슨 관계지? 생각해 보니 나도 누군지도 모르는 애들하고 사진 찍고 장난을 받아준 건 매한가지다.


마음이 통한, 친절한 슈퍼 아저씨


나는 얼음을 원한다. 내가 얼음을 그렇게 애타게 찾는 건, 숙소에 완님이 기증하고 가신 시원하지 않은 하이네켄 몇 캔이 있기 때문이다(맥주는 있지만 냉장고는 없음). 한두 캔 정도 그냥 먹어봤지만, 시원하지 않은 맥주는 정말이지 그 고유의 가치를 반감한다. 맥주의 생명은 시원하게 갈증해소인데. 그래서 나는 며칠 동안 돌아다는 내내 냉동고가 있는 가게가 보이면 들어가 아이스를 찾곤 했다. 처음에는 영어 단어 하나 <아이스>를 가지고 찾다가 나중에는 불어 <글라세>, 아랍어 <자이든>까지 동원해 찾아보고 아이스크림 통을 뒤져봤지만 얼음 파는 가게를 찾지 못했다. 끽해야 다들 아이스크림을 권할 뿐이었다. 그러다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마트에서 친절한 아저씨를 만났다. 그분은 나와 다른 언어를 썼지만 열린 마음으로 내 말과 행동을 이해했고, 나는 냉동고에 2L짜리 물 2통을 집어넣는 쾌거를 이루었다. 숙소에 돌아와 비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나를 의지의 한국인(적당한 비교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칭찬해주었다. 밤 10시가 넘어 찾으러 간 물통은 아직 완전히 얼지 않아 1개만 가져오고(일단 맥주 2캔을 비교적 시원하게 마시고), 다음날 오후에 다시 찾으러 갔더니 아저씨는 2L 물을 한 개 더 넣어두었다고 가겠냐고 하셨다. 이런 감동이... 하지만 그날 오후 체크아웃을 해야 했던 우리는 1개만 필요하다고(나를 위해 얼려두셨는데 그걸 냉동고에 두고 오자니 마음이 불편했지만) 하고 물과 치즈, 티슈만 구매를 했다. 아저씨는 어렵사리 이것저것(어디서 왔는지, 관광으로 온 건지 등. 나는 이 곳에 관광객이 원체 없어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냥 알제리 사는 한국 친구 방문차 왔다고 이야기하고 다님) 물어보셨고 이야기의 끝에 우리 봉투에 빵 하나를 넣어 주시며 알제리에서 잘 지내다 가길 바란다고 하셨다. 그 친철한 마음이 감동적이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시원한 맥주와 아저씨가 주신 빵, 그리고 마켓에서 산 감자, 피망으로 만든 튀김, 그리고 과일들로 숙소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왠지 이 아저씨랑, 매일 빵 두 개씩 구매한 빵집의 훈남 총각 미소는 종종 생각날 듯하다.


자잘한 에피소드들이지만, 아마 이런 상황들을 겪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알제리에 대한 이해와 정이 쌓여가는 것 같다. 소소하지만 나에겐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아무리 멋있게 찍었어도 <걸어서 세상 속으로>나 <세계 테마 기행>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는 느낄 수 없는 내게 쌓이는 감정들 말이다.



<표지 사진 : 기차역에서 갑자기 나타나 같이 사진 찍게 된 남자애들. 나는 그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내 사진을 1대 1로 찍어간 그 애들은 나중에 사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뭐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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