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여행자 3

있잖아, 나는 말이지 - 방랑 여행자의 소소한 프로젝트 @ life

by 방자

있잖아, 나는 말이지 - 방랑 여행자의 소소한 프로젝트 @ life

Live as traveler, think as philosopher, work as designer.
여행자처럼 살고, 철학자처럼 생각하고, 디자이너처럼 일한다.



라이프 메이트는 생일을 맞은 내게 헤이리에 있는 여행자 숙소에서의 1박을 선물해 주었다. 그곳은 글로벌 인생학교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헤이리 촌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다. 그가 쓴 책을 보고 관심이 있던 터였는데 이를 계기로 집에서 멀지도 않은 그곳으로 짧은 여행을 갔다. 촌장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대화 초반에 소박한 철학자의 삶을 꿈꾸는 방랑 여행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나에게 자기소개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고 말하셨다. 그의 말에 순간 움찔했다. 이내 나의 욕심이 세상을 이롭게 할 것 같다며 욕심을 부릴수록 세상이 더 공평해지고 평등해질 거 같으니 마음껏 펼치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마치 인정이라도 받은 양 마음이 일어 설렜다. 스스로 얼마나 욕심 많은 사람인지 모르지 않으면서 그걸 대놓고 말하는 게 마치 큰 범죄라도 인정하는 것인 양 어려워했었나 보다. 누가 슬며시 나의 주저를 알아주고는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독려해 준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그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내 삶의 많은 부분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내가면서 열심히 답하는 형식으로 장장 4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는 살면서 내게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았던 이야기도 물었고, 아무도 묻지 않아도 내가 줄곧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 여겨 떠들고 다녔던 부분도 물어주었다. 새삼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난 나의 행동의 원인까지 되짚어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내가 나의 과거를 여행하며 지난 나의 상처와 설움들을 털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예순을 훌쩍 넘어 보이는 그가 어떻게 그렇게 어린 소년처럼 호기심 많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사정상 그 비밀을 풀지 못한 채 자리를 떴지만, 그가 마음에 남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 듦과 상관없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기질들은 잃지 않은 채, 경험과 연륜은 쌓이되 언제나 청춘의 빛을 발해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무언가를 잃는 게 아니라 얻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는 것이 올해 새롭게 생긴 과제이다.


나는 아직 과제에 대한 최선의 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꾸준히 만들어 가는 프로젝트들이 하나의 길이자 답일 것으로 추측한다. 개인 프로젝트들은 내가 직업으로 하는 일들과는 달리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아무래도 성과를 채근당하는 일과 달리 이해관계자가 거의 없고, 자신을 권한 있는 의사 결정권자라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참여하는 프로젝트들의 다수가 내가 시작한 것이고 참여자를 모은 것이라 다른 참여자들이 은연중 나에게 그런 기대나 권한 위임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 도 있다. 하지만 나는 수평적 의사 결정 구조에 민감한 사람인 데다 결과나 성과 중심적 사고보다는 과정과 재미 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결과물을 재촉하진 않는 편이다. 물론 나 같은 사람들만 있어서는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참여자에게 동기 부여가 되지 않고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를 대비하는 방법은 나와는 다른 성향을 지닌 참여자와 함께 프로젝트 관리의 역할을 나눔으로써 운영 방식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프로젝트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내게 지향하는 방향으로의 큰 배움을 준다. 예를 들어, 5년째 진행하고 있는 여행자의 집이라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는 인내심과 내려놓음이라는 덕목을 얻게 되었다. 몇 년 동안 같이 프로젝트를 한 친구 하나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이 번번이 모임에 빠지거나 마감을 지키지 않는 등 약속을 가벼이 보는 태도에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지 말이다. 늘 약속을 지키고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억울하지도 않으냐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좀 서운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사실 프로젝트가 돈이나 생계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나의 재미와 성장을 위해 기꺼이 즐겁게 하는 것뿐인데 남들이 나처럼 열심이거나 즐기지 않는다고 내가 화가 날 이유가 딱히 없다. 나는 그저 나를 위한 기꺼운 최선을 다하면 될 뿐이고 그게 타인에게도 선하게 작용한다면 좋을 뿐이지 타인의 행동에 내가 감정적 스트레스를 받을 게 뭐겠는가. 이게 결국 비용이나 소유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내가 시작했어도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되고, 스스로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과 경제적 비용만 투자하면 문제가 될 게 없다. 나는 매년 프로젝트를 늘렸다 줄였다 한다. 가끔은 애정이 있지만, 상황상 진행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도 있고, 어떤 것은 장기적으로 또 어떤 것은 단기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것들은 내게 스펙도 아니고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일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도 없고 그저 놀이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나를 발현하고 나를 원하는 방식으로 쌓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가 기꺼이 하고픈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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