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나는 말이지 - 방랑 여행자의 소소한 프로젝트 @ life
나는 일 년에 한 달씩은 여행을 하고, 일상적으로 2개 이상의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산다. 가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심인지 아닌지 몰라 그냥 웃어넘기지만 사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제대로 살기 위해선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건 주변의 누군가가 지금 하는 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만 두지 못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면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 나는 책상 위에 ‘세상에 정해진 법이 있지 않다’는 무유정법(無有定法)과 ‘마음속 번뇌와 갈등,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붙여 놓고 가끔 자신을 돌아보며 산다. 하지만 삶에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를 위해 그 생각에 대한 집착도 쉬이 하는 그런 사람인 듯하다. 개인 프로젝트와 여행은 내가 본래의 나라고 믿는 것을 내려놓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스물이 되던 순간부터 대학원을 졸업하던 때까지 열심히 여행을 다녔다. 고등학교도 못 다니겠다며 그만둔 내가 대학교와 대학원을 그리 오래 다닌 이유는 여행을 다니는데 학생 신분과 방학, 휴학이라는 제도가 매우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게 유일한 사실이나 이유는 아니지만 결과 중심적으로 그리 판단해도 무방할 만큼 내 학창 시절은 여행과 중첩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 내내 알바를 했고, 번 돈의 대부분을 여행비로 썼다. 대학 졸업할 때 즈음하던 우스갯소리는 내가 쓴 여행 경비를 다 모았다면 괜찮은 중형차 한 대 뽑았을 거라는 말이었고,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엔 독립할 전세 자금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아닌 내가 왜 그렇게 여행에 집착했나 이제와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떠남’이 주는 자유, 그리고 곧 ‘낯섦’이 주는 깨어있음, 후에는 ‘혼자 있음’이 주는 나와의 온전한 시간이라는, 내가 시기적으로 필요했던 것들을 여행이 내게 적절한 시기에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학교나 조직에서 사람들과 부딪힐 때보다 길 위에 홀로 서서 지독히 외로울 때,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며 그들을 관찰할 때, 훨씬 더 많이 깨닫고 배우는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