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와이프 3

있잖아, 나는 말이지 - 하우스에서만 와이프 @ home

by 방자
“예전에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그 말이 그렇게 행하기 어려운 건 줄 몰랐던 거 같아.”

“어, 나도 그 시 아는데.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맞지?”

“그 시를 다 외우네.”

“응. 좋아하거든.”

“듣고 보니 그중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경험이라는 게 참 엄청난 거 같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함께 사는 삶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신뢰와 상처의 원인이 나에게 있을 뿐이지 타인에게 존재하지 않음을 스스로 이해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종종 그 생각이 매우 궁금한데, 물어도 영 말을 꺼내지 않는 걸 보면 모든 것이 다 자신의 넓은 아량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후 전혀 상처를 받지 않게 되었다거나 그에게 헛된 나 중심적 기대와 확신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그것이 나에게서 발생했음을 이해하여 상처와 배신감의 강도가 낮아졌다. 이로 인해 함께함으로써 누리는 기쁨과 상처를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의 가치의 차이가 커져서 쉽게 선택할 수 있어진 듯하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결혼이라기보다는 함께 사는 삶, 즉 동거였다. 그런데 양측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혼인 신고까지 하고 보니 그게 결혼인 듯도 했다. 아니 그보다 더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순간 타인들의 말에 의해 내가 결혼을 했고, 내게는 흔히 남편이라 불리는 (아직 한 번도 여보, 당신이란 호칭 등으로 불러본 적 없는) 라이프 메이트가 존재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와 한집에 살기 시작한 지 반 년쯤 지난 어느 날 결혼 제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란 부제로 작은 결혼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기왕 결혼했다면 뭐라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싶은 생각이었다. 2~30여 명의 지인 혹은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먹고 결혼제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그 행사가 결혼식인지 결혼 1주년 기념행사인지 물으며 제멋대로 생각하고 자리에 참여했고 맘대로 즐기거나 구경하다 돌아갔다. 그 작은 행사 하나를 하면서도 그와 내 생각이 얼마나 다른가를 깊이 느꼈고, 과연 둘 뿐 아니라 주변 이해관계자 (양가 부모님 등) 에게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결혼식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겠냐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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