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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Feb 23. 2021

끝과 시작, 이어가기에 대하여.

언제 어디서든 뒤돌아 봤을 때 후회 없는 삶을 꿈꾸며... Li.ED

1.

아침 9시. 온라인 정토회 불교대학 졸업식, 2500여 명이 전 세계에서 유튜브 실시간 방송과 구글 미트로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졸업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6개월 간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내가 제도 없는 삶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을 인정함에도 삶 내내 제도 밖을 지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이 아니라 종교였다. 열일곱, 이건 아닌 것 같다며 학교를 뛰쳐나왔던 혈기왕성한 시기에도 나는 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교회를 다녔고, 여행과 통학의 이슈로 집을 나온 이십 대에 이르러서야 교회를 나가야 하는 의무로부터 조금씩 벗어났다. 종교, 교회, 결혼 등 모든 제도에 대해 썩이나 부정적이었던 20대를 지나며 그들을 토론으로 파헤쳤고, 제도의 역할과 사회 기여를 인정했지만 제도를 이용만 할 뿐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종교와 교육이 합쳐진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코로나(요즘은 모든 게 코로나..) 탓이 아니라 덕이라고 하겠다.


가지 못한 여행의 대체였다. 낯선 곳, 낯선 사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상황(심리적 저항?),. 이러한 것들이 일상의 무료와 권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온라인이 아니었다면,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는데 덕분에 많이 배우고 느꼈다. 내가 불교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고, 종교로서의 불교와 수행으로서의 불교의 차이를 알았으며, 무엇보다 맘이 편해졌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소박한 철학자의 삶에 대한 비전을 정토회가 제안하는 참자유(해탈)와 참 행복(열반)에 이르기 위한 수행자적 삶에서 엿볼 수 있었다. 연기법적 세계관과 기반이 되는 삼법인, 십이연기, 중도의 이해, 그리고 해탈을 위한 팔정도, 계정혜에 대한 이야기는 지식은 물론 삶의 방식으로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제도와 조직에 대한 저항감의 업식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내가 불법에 귀의하고 불도를 따라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여행처럼 나를 깨어있게 하는 가르침으로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고 수행의 맘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자비로운 사람을 꿈꾸며...


Happiness does not depend of what you have or who you are.
It solely relies on what you think. – Buddha


2.

오후 1시 반. Journey to Creativity의 첫 번째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11명의 멤버가 여정의 버스에 올랐다. 나는 늘 쓰던 여러분을 원하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는 코치(마차)로 이 자리에 있다는 멘트가 아닌 나도 여행자인데 우리 여정의 코치(여행버스)를 제공한 사람이라는 말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 머릿속엔 파울로 코엘료가 쓴 소설 히피에 나오는 유럽을 횡단하는 마법 버스 여행이 연상되었다. 사람들을 선발하지 않고 성별, 연령 기준의 다양성에서 선착순으로 참여자를 확정했음에도 주제 때문인지 예술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랑 퍽이나 다를게 예상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여정을 시작할 생각을 하니 설레면서도 (버스라는 이동수단을 제공한 사람으로서) 내가 경험하게 될 복합적인 감정이 예상되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도, 찬찬히 경청해 듣지도 못했지만 뭔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업된 채 첫 모임을 마무리 했다.


밤이 되어서야 공교롭게 불교대학의 끝과 Li.ED의 시작 같은 날 맞닿아 있음을 인지했다. 그게 인지되니 특별한 날이 되었다. 하나의 여정을 마치고 어딘가에 닿자마자 역할을 레벨 업하여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기회가 생긴 운 좋은 날! 그래서 감사하고 자축하는 밤을 보냈다. 새로운 여정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얼마나 배울 수 있을지, 기대하고 상상하며.. 여행의 참 맛은 역시나 Uncertainty (불확실성)인 것 같다.     


Life is a long journey, with problems to solve, lessons to learn, but most of all, experiences to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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