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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기로

이야기, 넷. (별책)

by 방자

이 글은 비자 이슈에 대한 별책부록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조금 착잡할 수 있으니(어쩜 나만 착잡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여행기가 궁금하시다면 건너뛰셔도 됩니다.


우리는 완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조언을 받았다. 그리고 또 완님의 지인분들에게도 이야기를 들었다. 눈 앞의 현실은 명확하다. 몰랐던 건 슬픈 일이지만, 아니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알제리 방문 비자는 오늘부로 만료이다(오늘이 첫날인데). 경찰이나 헌병 등 누군가 관련된 사람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48시간 내에 추방조치를 당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른다면, 그냥 조용히 마음의 짐을 가진 채 알제리에서 불법체류자로 계획했던 여행기간 동안 살아갈 수도 있다(그럼 아마도 경찰을 만날 때마다 괜스레 찔려 움찔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이민국으로 찾아가는 방법도 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애처롭게 비자 연장을 요청해 볼 수 있고 우리에게 딱히 전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순수 관광 목적이니 그쪽에서 선처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민국은 오늘 문을 열지 않았다. 아니, 이런 업무는 일주일에 하루만 처리한다고 하니 그들을 만나는 그 순간 벌써 우리는 불법 체류자의 신분일 수밖에 없다. 만약 담당자가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안전성을 고려해 우리를 내쫓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불법 체류자가 된다면 제대로 된 사막 방문은 어렵다. 사막 방문은 사전에 가이드를 통한 신분확인 절차 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일단 절대로 비행기로 이동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은 너무 더워 가이드들도 잘 움직이지 않는 시즌이라고 하니 알제리에 왔다면 사막을 꼭 가봐야겠지만, 지금 가는 건 아예 불가능하거나 힘들 수도 있다(요즘 사막은 50도를 육박한다고 한다). 해안가 중심의 주요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나갈 때 잘 이야기하면, 어차피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내쫓는 것이니 어쨌든 큰 문제없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다시는 알제리에 올 수없을 수도 있겠지만. 온갖 조언과 경험 등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담으며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우리는 빨리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옵션은;

1. 최대한 빨리 나간다.

2. 자진 신고하고 선처를 기다려본다.

3. 걸려서 내쫓길 때까지 조심히 여행을 지속한다.


선택은;

두구두구두구.... 3. 위험한 선택 혹은 무모한 선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옵션을 고려하여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얻은 최선의 선택이다. (뭐, 누군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냐만은) 나는 (내 생각엔 그도) 스스로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일일이 나열하지 못한 주워들은 알제리의 문화적인 환경, 과거의 비자 이슈 등이 고려되었고, 이에 따라 발생할 결과들을 잘 감당하며 헤쳐갈 마음을 가지고 한 선택이니 걱정이 되더라도 내 앞에 (뒤에 몰래 던지는 것까지는 뭐라 하지 않겠음) 돌을 던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저 응원과 무사기원 기도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솔직한 실시간 여행기를 쓰겠다 해놓고 (말한 지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약간 후회됨), 이렇게 솔직해지기 어려운 이슈가 내 앞에 떨어지자 (우리 여행에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글에서 배제해야 할지 그저 담담하게 별일 아닌 양 써 나가야 할지 나름 고민이 있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지만 절대 이 이슈를 가볍게 생각해서도, 마치 과거의 무용담인 양 쉽게 떠벌리고 싶어서도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저 내가 처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랄까?



<표지 사진 : 루이스네 집, 벽>



다음 이야기 : 카뮈의 티파자, 티파자의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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