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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듬 Jul 17. 2023

몸에서 샤프심이 자라요


강력한 제모 후 당분간은 털이 자라지 않았다. 털이 없어 부들부들한 팔의 촉감이 좋았다. 이제는 자신 있게 짧은 옷을 입으며 피부를 드러냈다. 반소매, 반바지를 입어야 하는 여름의 체육시간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몸에 샤프심 같은 털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털이 자라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털이 빠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털들이 머리를 드러내며 까만 점처럼 콕콕 박혀있으니 소름이 돋았다. 부모님이 털을 뽑으면 털이 더 거칠어지니 내버려 두라곤 했지만, 부모님의 말을 어기고 제모를 했는데... 팔을 쓸어내릴 때마다 사포처럼 거칠 거리는 느낌에 아차 싶었다. 아빠의 턱에 난 선인장 같은 수염보다는 덜했지만, 따가운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털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을 때 친구들과 놀 때면 신경이 곤두섰다. '친구의 보드라운 팔이 내 팔과 스치기라고 해서 따가워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행동을 조금 더 조심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방어가 잘 되진 않았다. 격 없이 지내는 아이들끼리 팔짱을 끼고 붙어 다니는 건 일상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거친 팔이 친구의 팔에 스치면 서로 흠칫 놀라 살짝 떨어진다. 둘 다 별말은 하지 않아도 친구들과 가볍게 팔짱 끼는 것도 조심스럽게 만드는 샤프심 박힌 팔이 싫었다. 


얼른 이 여름이 지나가길 바랐고, 긴 옷을 입어 털을 가리는 계절이 오길 바랐다. 그때부터였을까 여름은 가장 싫은 계절이 되었다. 너무 더워서, 벌레가 많아서, 눅눅하고 습해서도 아니고 털 때문에 싫었다. 사계절 중 여름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였지만 어김없이 여름은 찾아와서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조금씩 존재감을 보이는 털을 다시 제거하기 위해선 다시 몸에 끈적한 액체를 바르고 털을 뜯어 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제모 효과는 좋았지만, 그 짓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이 덜한 제모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털은 눈치도 없이 잘도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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