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뿔테 안경 바깥쪽의 나
여자는 책을 좋아했다. 소설가가 되는 대신 사서가 됐다. 적당한 때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 낳았다. 매일 아침, 초등학생인 큰 아이가 등교를 하면,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한다.
8시 25분, 아이가 유치원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잠시 서있다가 돌아선다. 유치원에서 도서관까지는 700m 거리, 급하면 아이들 학교나 유치원으로 얼른 뛰어갈 수 있게 직장 근처로 이사를 했다. 직장으로 향하는 여자는 두꺼운 뿔테 안경 안쪽으로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느리게 걷는다. 너무 느리게 걷는 바람에 나머지 세상이 빨라진다. ‘나는 왜 시작하지 못할까?’ 여자는 자신이 글 쓰는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8시 38분, 도착 100m 전 사거리 지점에서 여자는 다시 그 여자와 마주친다.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자주 오는 여자다. 매일 똑같다. 1학년? 2학년? 아이의 책가방을 대신 멘 여자가 두 아이와 잡기 놀이를 하듯 달려간다. 깔깔깔 웃으면서,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여자는 그런 여자를 바라본다. ‘저렇게 단순하게 살면... 행복할까? 행복해질까?’ 아닐 거라고, 여자는 고개를 젓는다. ‘그래, 글을 쓰자.’ 여자는 다짐한다. 다시 느리게 걷는다.
9시가 되면, 어쨌거나 직장에 도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