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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an 24. 2022

머리를 통째로 다른 세계에 담그는 도망의 기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박수근 전을 보고 오는 길이었다. 겨울 해거름의 거리는 차갑고 어두웠다. 아이의 손을  움켜쥐고 몸에 잔뜩 힘을   걷고 있었다. “엄마,  사람  엄마 같다.” 걸음보다도  빨리, 시선을 재촉하던 나는 아이와 함께 멈추어 섰다.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을 묘사한 청동 조각상이 있었다.  읽는 여인상이라니, 그것도 나의 어린 사람에게 그렇게 보였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뭐, 얼마쯤은 사실이다. 나는 최근 4개월 동안 짬이 날 때마다 정신없이 읽었다. 근사함과는 거리가 먼, 도피의 수단이었지만. 그렇게 읽다가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서 ‘난정’을 만났다. 고통의 시간, 자기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끝없이 읽는” 행위를 선택한 난정은 “낙관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만한 게 없다”라고 말한다. ‘맞아, 맞아. 그렇지. 그렇고 말고.’ 나는 맞장구를 치며 더 멀리 도망갔다. 사정은 이랬다.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나는 그냥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그래 단 한 줄도.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다. 나는 컴퓨터 앞에 정지된 상태로 아주 오래도록 앉아 있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첫 책도 출간하지 않은 신인 작가였다! 꼴랑 단편소설 서너 편을 발표했을 뿐이었다. 겨우 그걸 쓰고 슬럼프라고? 말이 안 됐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뭉개졌다.” 혹시, 제 대변인이신가요? 강화길의 소설 <대불호텔의 유령>의 화자는 나에게 빙의한 게 분명했다. ‘소설’이라는 단어만 ‘삽화’라는 단어로 바꾸어 말했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잠식해갔고, 나는 숨을 쉬기 위해 난정이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통째로 다른 세계에 담가야만” 했다.  


작업을 정말 겨우 끝냈다. 책 읽는 여인상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내 사정은 우리 아이들이 더 잘 아니까. 그래도 그것 아시는가?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 여사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같이 많이 읽는 애는 언젠가 쓰게 된다.(..) 뭐든 쓰렴.”이라고. 작업의 마감과 동시에 불타오른 창작열 (아, 얄궂은 창작열이여!) 나 이렇게 뭐라도 쓰고 있으니, 뭐라도 그리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아니,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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