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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an 27. 2022

행복의 레시피

궁상떨던 이야기를 좀 해보자. 깊은 밤 가로등도 드문 길을 달려 화덕 핏자집 앞에 다다랐다. 묵직한 나무문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힘껏 당기려는 순간이다.

  

나는 미국에서 일 년 정도를 나의 첫아기 라윤이, 그리고 육아를 돕기 위해 와 주신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엄마가 먼저 와주시고 얼마 후에 은퇴를 하신 아버지가 와주셨다.) 사실 출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연구 보조나 강의 보조로 일해서 번 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고 아낀 돈을 모아 한국 갈 비행기표를 샀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나서 가난한 유학생이 되었다. 늘 바빴고, 통장의 잔고는 늘 간당간당 했다.  


부모님께 뭔가 좋은 것을 해드리고 싶은데 도무지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궁리 끝에 나는 좋은 영화를 골라두었다가 주말 저녁이 되면 거실에서 상영을 했다. 팝콘을 튀기고 오징어를 구웠다. 그리고 입장료로 부모님께 2불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유치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입장료를 거라지 세일 garage sale에서 산 원목 레시피 박스에 모았다. 상자에 돈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외식을 했다. 슈트를 차려입고, 원피스를 꺼내 입고, 제일 잘 어울리는 원지 onsie를 골라 입히고. 그럴 때면 우리 모두는 한껏 들떴다, 아이들처럼. '이번에 가는 식당은 어떤 곳일까? 식당 문을 열 때까지는 알 수 없지.’ 작은 설렘으로 그렇게 식당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모든 감각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빛과 온기와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 숯불 향을 입은 핏자의 냄새. 궁상스럽지만 흐드러지게 행복한 순간의 기억, 오늘 문득 그 시절 레시피 박스에 담았던 '행복의 레시피’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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