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란
요즘은 햄버거며 케이크며 배달앱에서 언제든 클릭만 하면 맛볼 수 있지만, 그때는 더군다나 시골에서는 아이들을 유혹할만한 먹을거리가 다양하지 않았다. 웨하스, 샤브레, 빠다코코넛이나 있었으려나. 학교 앞 문방구에 졸졸이 늘어놓은 불량식품들만 기억난다. 할아버지는 그 안에서 늘 수를 찾아냈다. 겨울방학이라고 손주들이 가면 할아버지는 아궁이에서 숯을 긁어 화로에 담곤 했다. 꼬치요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꼬치에 돼지고기를 꿰고, 가래떡을 꿰었다. 돼지고기 기름이 화로 위에 떨어지고 치지직 하는 소리가 날 즈음 고운 소금을 툭툭 치면 짭조름하고 고소롬한 냄새가 재래식 부엌 안에 퍼졌다. 기름장과 조청을 곁들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나는 오 년간 고기를 팔았다. 가게 이름은 ‘돈가 화로구이’였다. 퇴직금에다 빚을 얹어 몫이 좋은 곳에 30평짜리 점포를 인수했다. 식당일에 뛰어들 때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이 할아버지의 돼지고기 화로구이였다. 화로구이집은 일손이 많이 필요한 식당 중 하나였다. 불을 피우고 숯을 태우고, 판과 화로에 눌어붙은 기름때를 벗겨내야 했으므로 직원을 여럿 뒀다. 우리집 화로구이 고기는 맛있었다. 서비스로 내는 가래떡 구이도 역시 그랬다. 인근 직장인들은 다 우리집에서 회식을 했다. 맛집으로 소문나 호황을 누렸다.
자리를 잡았다 싶었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고깃집은 저녁 장사인데 영업시간 제한에 묶여 매출이 반으로 줄었다. 빚이 늘어갔다. 다 포기하고 가게 문을 닫으려다가 홀서빙을 보는 알바생이 지나가 듯한 말을 주워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요새는 구이 고기도 배달을 시켜먹는다는 거다. 수수료와 광고비는 만만치 않았지만 배달업체로 입점했다. 수동형 용기 포장기를 사들이고 플라스틱 용기를 창고에 채웠다. 서비스를 후하게 주고 배달앱 리뷰에 댓글을 꼼꼼하게 달았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잡고 앉아 손님들에게 맛있지요, 맛있지요, 연신 연방 너스레를 떨었다. 한 날은 이럴 거면 집에 들어가서 편하게 일하지 싶었다. 아내와 이른 저녁을 먹을 참으로 화로구이 2인 세트를 포장해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플라스틱 비닐과 뚜껑을 벗겨내고 식탁에 쭉 늘어놓고 앉았는데 식욕이 돌지 않았다. 바삭하게 구운 고기와 가래떡은 한 데 시들했고, 칸칸이 담긴 김치, 콩나물무침, 양파 초절임도 윤기를 잃었다. 이건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그 옛날 할아버지가 무쇠 화로에 지글지글 구워주던 그 요리도 뭣도 아니었다.
#픽션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