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들이 아침을 먹고 집을 빠져나갔다. 커피를 한 잔 내려 책상 앞에 앉았다. 목적도 없이 마우스를 쥐고 흔들어 컴퓨터를 깨웠다. “Case Review Study”라는 제목이 적힌 파워포인트가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어젯밤 남편이 작성하던 파일인 것 같았다. 커피를 머금은 채 슬라이드를 넘겨보았다. “Care process of physical aspect”라고 적힌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타임라인 위로 통증과 짝을 이룬 감정들이 출렁였다. 저기 너머의 것들을 엿보는 심정으로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을 상상해보았다. 마지막 두 슬라이드에는 사진이 삽입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런웨이 위에 선 모델의 사진이었다. 모델은 ‘난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의상을 입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굳이 남편에게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 사진을 보면서 힘을 얻었으니까. 쾌활한 미니스커트, 알록달록 네일, 바람에 부풀려진 하얀 셔츠, 아이들 가방에 달려 움직일 때마다 달랑거리는 봉제 인형을 볼 때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을 살만하게 하는 건 어쩌면 커다란 의미가 아니라 이런 작은 어여쁨이 아닐까 멋대로 결론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