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가족이란-

by 윤소정

[2019. 5. 6 새길교회 말씀나눔]

라윤아, 가족이 뭐야?
가족이 가족이지 무슨 가족이야! 가족이 가족이지.

일곱살 라윤이에게 가족은 그렇게 자명한 것이었던가 보다. 공동체 안에서 나눌 ‘가족’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준비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라윤이에게 물었더니, 무슨 그런 질문을 다 하냐는 얼굴로 “엄마, 가족은 가족이지!”를 연신 반복했다. 그런데 나는 답을 알지 못해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되물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가까운 선생님 사부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인사를 드리고 와서 알았다. 화장장까지 따라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너무 춥고 허기가 졌다. 철에 맞지 않는 스웨터를 꺼내 입고 두꺼운 양말을 꺼내 신고 진하게 커피를 한잔 내렸다. 모닝빵을 반으로 갈라서 그 안에 치즈를 한장 넣고 주방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빵과 커피를 먹었다.


그 때 갑자기 알 것 같았다. 나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결혼을 하고 공부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지내다가 라윤이를 낳고 한국에 들어온 내가 남편의 직장 때문에 낯선 도시로 이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어린 라윤이와 태중에 태율이를 품고 섬처럼 지내던 시절, (얼마전 사별하신 바로 그) 선생님께서 집에 불러다가 뜨뜻한 소고기 버섯 전골에 땅콩이며 콩이며 온갖 잡곡을 잔뜩 넣고 영양밥을 지어주셨다. 그 한 상 위에는 내가 따르는 또 다른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고추장에 잘 박아놓은 향이 진한 더덕 반찬도 올라와 있었다. 집에 갈 때는 또 다른 한 선생님께서 유명한 빵집에서 사오신 맛있는 빵이 가방 안에 가득했다. 당시 나는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아서 혹여 아이가 잘못 될까봐 마음 졸이느라 양껏 못 먹고 늘 배고픈 산모였다. 그런데 그 날은 혈당이고 뭐고 그냥 마음이 푹 놓여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빵도 차도 실컷 먹었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가족은 그런 따뜻한 밥 한끼를 나누는 사이였다. 비슷한 시절을 살았던 S 언니가 설움 타지 말라고 만들어 주었던 설탕 안 들어간 치즈케이크, 연말 모임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내 입에 Y 언니가 연신 떠넣어주던 상콤하고 달콤하고 이국적인 향의 음식들, W 언니의 보글보글 부대찌개, ‘저 음식 다 먹으면 어딘가 고장나고 말지’싶게 상다리 휘어지는 우리엄마 밥상, 내가 내려간다고 하면 새벽부터 텃밭에서 키운 약재를 넣고 몇 시간이고 고아서 진국이 따로 없는 우리 아버님 오리탕, 그런 음식들이 생각났다. 마음이 추운 날에도 그렇게 밥상 앞에 마주앉으면 뜨끈한 것을 입안에 밀어넣게 되고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던 것 같다. 그랬다. 나에겐 그렇게 밥상에 둘러앉는 사이가 가족인 것 같다.


맞다, 맞다. 밥이 중하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라는 말도 생각나고 얼마 전 심리적 응급상황을 중재하는 전화 상담사로 일하시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자살 위기의 아이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대화가 그것이라고 한다.


너 어디야?
밥은 먹었니?
일단 밥부터 먹자.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했던 날의 오후,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안고 업고 다니던 우리집 두 아이는 이제 7살, 5살이 되어서 유치원에 다닌다. 아이들을 데리러 유치원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라윤이가 먼저 쪼르르 내려왔다. 유치원 가방에 뭔가 붙어있어서 물어보니 나에게 쓴 편지라고 한다. 펼쳐보니 이런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엄마, 매일매일 밥해조서 고마워. 역시 가족은, 밥인가 보다.

고로, 나에게 밥은 하늘이고, 하늘을 나누는 사이가 가족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어설프게 영어에 노출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