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환경공무관의 하루
오늘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구본 하나가 나왔다.
플라스틱이 살짝 긁혀 있었고 대륙 색깔은 조금 희미해져있었다.
그래도 돌아는 갔다.
괜히 한 번 돌려봤다.
나는 20대 때 세계 여행을 꽤 좋아했다.
한 나라 찍고 오는 여행 말고
조금 길게, 느리게 다니는 걸 좋아했다.
가본 나라만 20개는 넘는 것 같다.
유럽 골목도 걸어봤고 동남아 시장도 돌아다녔고
이름도 잘 기억 안 나는 작은 도시에도 며칠씩 머물렀다.
그때의 나는 지도 위를 실제로 밟아보는 게 좋았다.
세상이 생각보다 넓다는 걸 몸으로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2주 이상 자리를 비우는 게 쉽지 않고,
연차라는 게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길게 비우는 건 부담이 된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세계여행은 생각보다 멀어졌다.
예전엔 “다음엔 어디 가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이번 주는 어떻게 보낼까”를 더 자주 생각한다.
지구본을 들고 있으니까 괜히 그 시절이 떠올랐다.
비행기 타기 전 공항의 공기,
처음 가는 도시에서 길 헤매던 느낌,
아무 계획 없이 걷던 오후.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자유롭고 평온했던 시간이었다.
근데 그 기억을 오래 붙잡고 있진 않았다.
지구본을 다시 봉투에 넣고 리어카를 밀었다.
나의 현실은 다시 시작된다.
골목은 여전히 그대로고 정리해야 할 것들도 그대로다.
그래도 요즘은 이 생활 나름의 리듬이 생겼다.
아침 공기가 바뀌는 걸 느끼고
계절이 지나가는 걸 바로 알고
가끔은 주민이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진다.
거창하진 않다.
대신 작고 확실하다.
소소하게 괜찮은 순간들.
예전엔 멀리 가야 새로운 걸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같은 골목을 걸어도 매일이 조금씩 다르다.
오늘은 지구본이 있었고
어제는 쌍화탕이 있었고
어떤 날은 달을 보다가 노래를 듣기도 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하루는 충분히 채워진다.
나는 지금 세계를 돌고 있진 않다.
대신 한 동네를 반복해서 걷는다.
근데 그 안에서도 나름의 풍경이 쌓인다.
지구본을 한 번 돌리던 손으로 다시 리어카를 잡았다.
예전처럼 멀리 가진 못해도
나는 오늘도 내 방식대로 하루를 지나가고 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삶을 여행처럼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