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의 서울 호캉스

서울에서 만난 느린 하루

by 빛나볼게요

빠르게 변해가는 일상 속에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멀리 떠나는 여행보다
도심 속 호캉스가 더 효율적이다.


공휴일이 낀 긴 주말,

길은 막히고 사람은 북적이는 시기.
우리는 반대로 서울 중심가로 향했다.

마침 엄마 생신이기도 했고
연휴도 겹쳐서 남편이 말했다.
"장모님 모시고 우리 호캉스 어때?"

좋은 생각 같아! 라며
미리 예약해둔 서울 신라호텔로 향했다.


남편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바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너무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히 휴식을 누릴 수 있는
‘호캉스’를 자주 즐기는 편이다.


서울 시내 호텔도 제법 많이 다녀봤지만
남산 쪽은 늘 하얏트만 갔고 신라호텔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엄마 생신과 처음 찾는 호텔이라

마음 한켠이 괜히 설레었다.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

각종 행사와 체크인 인파로 북적였다.
우리는 라운지로 올라가 체크인을 마친 후
엄마를 위해 좀 더 넓은 방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남편과 딸아이는 수영장으로 향했고
엄마와 나는 호텔 주변을 산책하려다 아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러 잠시 수영장에 들렀다.

그런데 그곳에서 남편이 딸아이를 다그치고 있었다.

신라호텔 규정상 140cm 미만 어린이는
구명조끼 착용이 필수였는데, 구명조끼를 입기

싫어하던 딸과 남편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던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남편과 아이의 마찰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난 중간에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이는 그저 수영학원에서 배운 접영 실력을
멋지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규정 때문에 그러지 못해 속상했던 거다.

“다음에 보여줘. 오늘은 규칙을 지키자.”
아이를 달래고 남편에게도 말했다.
“아직 설명해주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 나이야.”

기분 좋게 구경 갔다가 괜히 걱정만 더해져서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몇 캔 사고 방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허기가 밀려왔다. 맛있는 저녁과 함께

룸에서 간단하게 엄마 생일파티를 하고

호텔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산책로, 생각보다 길고 경사가 있어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 정도 등산하듯 걸었다.

샤워를 마치고 반신욕까지 하고 나니
침대 위 포근한 침구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휴식처처럼 느껴졌다. 개운하게 꿀잠을 자고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신라호텔 조식은 단지 메뉴 수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졌다.

우리 모두 만족스러운 아침을 즐겼다.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동대문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주차 걱정 없이 온 가족이 함께 오랜만에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닌 다른 곳에

‘여행자’로 와 있는 느낌.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히 ‘탈출’한 기분을 누릴 수 있다.
서울 속 호캉스는 우리 가족에게 꼭 맞는 여행이었다.

조금 다른 공기, 조금 느긋한 시간,

조금 더 따뜻한 대화.
행복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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