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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Nov 27. 2023

자기야? 나 뭐 바뀐 거 없어?

성공스토리 - 일상 이야기 

내가 아는 후배는 털모아저씨처럼 수염이 많다.

3일 정도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그렇게 자란다고 했다.

나는 수염이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면도를 하지 않으면 지저분하지만, 코와 턱 밑에 몇 가닥 자라는 정도다.

아침에 일어나 쉐이빙폼 조금 바르고 면도칼로 몇 번 슥슥하면 끝이다.


면도날은 8개~12개 들이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쓴다. 

한 번은 좀 저렴해서 주문을 했는데, 수염이 잘 깎이지 않았다.

잘 깎이는 면도날이랑 바꿔가며 그럭저럭 썼는데, 1개가 남아 있었다.


2~3주 된 면도날을 빼고 저렴이를 끼워 면도를 했다.

몇 개월 놔뒀더니 수염이 전혀 깎이질 않는다.

날이 수염을 밀고 지나간다.

빗으로 머리를 빗는 느낌이다.


다음날도 저렴이로 면도를 했다.

수염이 전혀 깎아질 않는다.

아침마다 수염을 빗는 기분이다.

이번 기회에 수염을 길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티가 안 났지만, 3일이 지나자 코와 턱 밑이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아내와 두 딸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수염에 대한 험담을 한다.


스티븐잡스,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도 수염을 길렀다.

수염 기른 사람 중에 잘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

아마 그들도 처음에는 가족들의 반대가 거셌을 거다.

하지만 기르고 보니 멋있어서 아무 소리 안 했을 거다.

맞다. 국내 배우 하정우도 수염이 얼마나 멋있냐?


급기야 수염을 기르면 재수 없을 거라는 악담까지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기분이 나빴다.


"다음 주 추석이잖아? 어른들 뵈는데 이러고 갈 순 없으니 딱 그때까지만 길러볼게!"

한시적으로 기르겠다는 말에 잔소리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볼 때마다 가족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수염이 어느 정도 자라니 거울 속의 나는 정말 지저분해 보였다.

멋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늙어 보였다.

쉐이빙폼을 잔뜩 짜서 수염을 밀어버렸다.


저녁에 큰 아이 픽업을 하러 갔다.

과하게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큰 아이도 나를 본다.

몇 번을 시선을 마주쳤는데, 큰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빠 뭐 달라진 거 없어?"

모르겠다는 대답에 몇 번 더 물었다.

급기야 큰 아이는 짜증을 냈다.

"그냥 말해!"

조금이 아니라 엄청나게 달라졌는데 모르겠냐고 물었지만 큰 아이는 모르겠다고 했다.

"수염 깎았잖아!"

그제야 아이는 머쓱하게 웃으며 정말 모르겠더라고 했다.


"집에 가서 엄마랑 동생한테 확인해 보자. 수염 깎은 거 알아보는지."

집에 도착해 큰 아이 배가 좀 고프다고 했고, 아내는 과일을 준비했다.

방에서 공부하던 둘째도 거실로 나왔다.


큰 아이가 가족들에게 물었다.

"아빠 뭐 달라진 거 없어?"

첫째가 아내와 둘째에게 물었다.

모르겠다고 했다.

큰 아이가 몇 번을 더 묻자, 짜증을 내며 그냥 말해라고 한다.

반응이 비슷하다.

오늘 아침까지 맹비난의 대상이던 수염이 사라졌는데, 아무도 못 알아본다.


남자들에게 공포의 질문.

자기야? 나 뭐 바뀌어 없어?

바뀐 거 몰라도 무관심 아니니 걱정말자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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