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목요일 : 비둘기
한강 공원에 갔다. 나무 그늘 밑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주변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비둘기가 있었다. 사람 따위는 무섭지 않은 듯 온통 먹을 것에만 집중한 비둘기는 돗자리 위 과자를 향해 다가왔다. 싫고 겁이나 비둘기를 쫓아보았다. 그러나 쫓아내고 또 쫓아내도 비둘기는 다시 되돌아왔다. 결국 비둘기를 피하기 위해 돗자리를 접었다. 나무 그늘 밑 여유를 짧게 만든 비둘기가 얄밉고 싫었지만, 그 감정 외에 '사람이나 비둘기나 저 정도 끈기는 있어야 먹고살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기 위에 앉아 있는 비둘기님, 우리를 내려다보시는군요.
거기서 보는 세상은 어떤가요?
매일 바쁜 사람들 모습에 지루함을 탓하시려나, '오늘은 또 어디 가서 한 끼 때워야 하나'하는 걱정을 하시려나.
홀로 저 높이 앉아 있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비둘기님이나 나나 어찌 보면 비슷한 하루, 비슷한 고민에 어디든 한적한 곳에 가 멀리 내려다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싫어했던 거 미안.
- 2015.06.18.
언젠가 출근길 가로등 위에 홀로 앉아 있던 비둘기에게서 눈길을 뗄 수 없었던 날.
전지적 비둘기 시점으로 보는 세상.
회사 출퇴근 길가에 비둘기가 죽어있었다. 비둘기의 죽음 근처에는 가까운 상점도 없고, 그를 피하는 사람들만이 있어 죽은 비둘기는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남겨진 죽음의 흔적은 차바퀴에 의해서만 닳고 닳아졌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비둘기의 흔적은 사라졌다.
여전히 나는 그 길로 출퇴근을 한다. 지금에서야 아무도 피하지 않는 그 길이 언젠가 죽음의 흔적이 사라진 비둘기 생의 마지막 장소였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죽고, 살고. 시간이 살아내는 세상에 비둘기나 사람이나 잠시 왔다가는 존재라면, 무언가에 쫓기듯 행복을 갈망하며 돈에 집착하는 이 몸부림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그냥 겁이 나서, 무서워서 싫어했다. 그러다 가끔은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게 의미가 없을 뿐, 어느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발자국 물러섰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만한 모든 존재는 살아서 함께하길. 서로를 찾고 마주하고, 잠시나마 서로의 곁에서 쉬어갈 수 있길.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