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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Aug 28. 2016

마음의 문장

7월의 월요일 : 편지



07.04.


누군가를 향한 글을 쓴다는 것은 온전히 그에게 나를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향해 글을 쓰는 시간 동안에는 그와 나만이 존재한다. 


펜을 들고 나와 그 사이를 글로 채운다. 종이를 채워가는 문장 가운데 민낯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비로소 민낯일 때에만 전할 수 있는 것들을 늘어놓는다. 가끔 글자가 다할 수 없는 자간 사이의 여백에 담긴 마음을 무엇으로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래서 단어 하나를 두고도 한참을 생각한다. 무엇을 적든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그에게 달린 것임을 알지만, 그의 해석이 나의 마음과 비슷한 방향이길 바란다. 


동시에 필연적으로 어떤 마음을 다한 글이라도 결국에는 잊힐 것임을 알고 있다. 오래된 영수증에서 사라진 글자를 떠올릴 수 없듯이, 잊히고 사라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훗날 사라진 글자를 애써 떠올려도 떠올릴 수 없게 되었을 때에는 마음 아픈 일이 되어 있을 것이기에, 어떤 형태로든 가능한 가까이에 오래 남아 있길 바란다. 더불어 이 당연한 이치를 그도 알고 있기를 바란다.


꿈같은 바람이 분다.




07.11.


편지를 보내기 전, 사진을 찍어둔다.


진심의 순간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러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 함을 깨달았을 즈음부터 그래 왔다. 그리고 가끔 이미 보낸 편지를 다시 읽어 볼 때가 있다. 드물게 남긴 나를 향한 글을 살펴볼 때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넨다.


우리는 괜찮은 건지, 나는 괜찮은 건지, 나의 문장들은 유효한지.


바람에 흩어져 버린 진심, 다짐을 볼 때 느끼는 공허함, 요즘 그렇다.

동시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곤 한다.




07.18.


내 마음에 편지를 써요.

당신을 향한 한 줄, 나를 향한 한 줄.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요. 혹시나 목소리로 마음을 전하다 바람결에라도 흩날릴까 봐, 차마 건네지 못한 말들이 마음에 있어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소중히 품어요. 때론 말로 전하지 못한 마음이 당신에게 전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요. 그리고 가끔은 믿어요. 세상에 그렇고 그런 뻔한 인연들이 태반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은 인연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가끔은 믿어요.


가끔은 진짜가 있다고 믿어요.




07.25.


네 마음을 받고 네게 쓰다.


스물 하나에 만난 우리가 어느새 카페에서 낮맥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사이 생각지 못했던 것들 중 몇 가지는 현실이 되었고, 의심의 여지를 갖지 않았던 우리 사이는 다행히도 여전하다. 분명 우리는 오늘도 변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존재로 곁을 지키고 있다.

서로의 위태로움을 인지하고 곁에 있겠다는 말이 한편으론 참 흔한 세상이다. 그 헛된 말들 가운데 타인에게 받았던 상처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고 있는 나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힘듦을 토로하는 내 앞에서 힘이 되고자 애썼을 그를 생각하니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가 내게 가졌던 고마움이라며 고백했던 날처럼, 나 역시 오늘 그런 마음이었음을.

세상은 꿈이라 하지만, 내겐 아직 꿈만은 아닌 것들이 있다. 다들 내게 말했듯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될 거라는 뻔한 인생의 장면들이 순순히 나의 것이 되지는 말았으면 했으나, 살다 보니 그들의 말처럼 내 인생에도 몇 개의 뻔한 장면들이 생겼다. 아프지만 그리 쉽게 뻔해지는 인생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다.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들이 많지만, 가능한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고 믿을 수 있을 만큼 믿어서 꿈같은 현실에 있고 싶다.

나의 고민이자 바람 앞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꿈같지만 뻔하지 않은 나의 세상에 기꺼이 함께 하겠다는, 그럴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의 말을 가슴 깊이 담았다.

미안하고 고맙고, 오래 함께할게.


네 마음을 받고 나를 향한 글을 찾다.


왜 우리는 그토록 빨리 '유일한 정답'을 정하려 하고 '정답자'가 되려 할까?

정답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뀐다. 그런 점에서 정답은 정해진 그 무엇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며,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적절하고 최선인 것'이다. 무엇이 지금 가장 적절하고 최선인지 구하는 과정이 곧 정답을 찾는 과정이다.

- 필로 이경희, '자기 미움'


Try to love yourself waiting to be called in the deepest bottom of heart.
Live with it.

- 책 'Words for the Beautiful Woman' 中


괜찮아질 거야.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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