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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Aug 28. 2016

그냥 해봤어

6월의 금요일 : 전화



06.03.


일을 다 끝마치고 밀려오는 헛헛함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 동안 내 이야기를 하고, 또 그만큼의 시간동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 속에서만 맴돌던 생각들이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순간이 되어서야 깨달음을 인정했다. 보았지만, 보지 않은 척 했었던 것들을 이제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관계에서 오는 불안함. 운명적인 외로움. 연이은 시험. 욕심 내서 빌린 책들 가운데 1권을 겨우 읽는 감당하기 버거운 욕심. 방 안에 있는 몸과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찬 머리, 그 사이의 큰 간격. 하고 싶은 것도 금방 잊어버리는 미직지근함. 지긋지긋한 내 인생의 수식어들.




06.10.


나는 매일 똑같은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매일 똑같은 얘길 
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오늘이 특별한 
날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또 이리 외로운지
...

- 치즈, '퇴근시간' 中


어릴적 보았던 드라마에는 자신을 핸드폰 단축번호 119번에 저장하라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나왔다. 언제든 필요할 때 도움이 되어주겠다는 그 사람의 매력은 한동안 장래희망 칸에 '선생님'을 쓰게 만들기도 했었다. 시간이 흘러 '선생님'이란 직업은 장래희망 칸에만 남아 있는 것이 되었고, 친구들에게조차 단축번호 119번 같은 존재가 되지 못할 때가 더 많아졌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쉽지 않다.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나와 달리 오래전 모습으로 먼 곳에 남아 있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 편안하기까지 했던 침묵이 어느새 답답한 공기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 서로가 아닌 그 무엇도 탓할 것이 없음을 받아드리고 나서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그 곳에 남아 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119를 찾아.




06.17.


언젠가 갑작스런 입국 후 첫 번째 전화라며 반가운 목소리를 들려주던 친구는, 첫 이직 후에도 그 사실을 내게 처음 말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길을 나서면서도 나를 떠올리고선 만남을 먼저 청했다고 했다.


타인의 머릿 속에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벅찬 일이여서, 어제의 힘든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06.24. 


"요즘 왜 그래?"

"나 좀 예뻐하라고 그러는 건데?"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처 뜨거워지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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