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냥 Nov 06. 2016

아름다움, 그 곁의 이야기까지.

8월의 목요일 : 꽃 



08.04.


1.

퇴근길, 두 여자를 봤다. 한 명은 꽃다발을 들고 설렌 표정으로 걸어갔다. 다른 한 명은 버스 정류장에 있는 벤치에 앉지도 못한 채, 땅에 주저앉아 슬프게 울고 있었다. 동일한 시점, 상반된 모습을 한 두 여자를 본 것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삶의 단면은 언제나 아플 수 있고, 언제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일까. 지금의 순간이 멈춰진 상태로 모두가 만나 하나가 된다면, 그것을 어떻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아프다'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의 삶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2.

삶이 내게 말한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넌 충분히 노력했다고.
안 되는 걸 어떡하냐고.

지치는 게 당연하다고.
외로운 게 당연하다고.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렇게 최선을 다한다 해도
안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 전승환, '나에게 고맙다' 中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해서, 씨앗이 초록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화려한 꽃을 피어내지 못하였더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였더라도 살아있는 것은 마땅히 살아야 한다. 살아서, 살아있는 존재로 사는 삶.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기 때문이다.



08.11.


1.

빈 책상 위에 오랫동안 가만히 놓여 있던 꽃다발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당연한 것들과 함께 꽃도 사라진다. 쓰레기통 안에 버려진 꽃을 바라보며 남몰래 아쉬워했다.


'이제 너도 가는구나. 안녕. 지금 네가 가도, 언젠가 네가 있었다는 기억은 남겨둘게. 잘 가.'


2.

눈 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 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면서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라고

- 김승희, '장미와 가시' 中


그러니 너무 힘들어만 하지 않기를.




08.18.


꽃을 좋아한다. 꽃이 자리한 길목에 오랫동안 시선을 두는 것으로 마음을 채운다. 사진도 찍어둔다. 


우연히 엄마의 폰 사진첩을 보았다. 엄마의 사진첩에도 꽃이 가득했다. '난 왜 이렇게 꽃 사진을 찍을까'싶던 궁금증을 풀었다. 엄마 딸이니까. 그러다가 꽃 사진을 찍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꽃이) 참 예쁘다' 하는 마음과 '(꽃은) 참 예쁘네' 하는 마음.

꽃 앞에 서서 그동안 쉽게 생각지 못했던 엄마만의 삶을 떠올려본다.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그 나이를 살아간다는 것. 엄마 딸이라는 보호를 벗어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동시에 홀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시간의 격차 가운데 이렇듯 문득 동질감을 느낀다.




08.26.


이유 모를 꽃다발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꽃다발을 들고 있어서 더 잘 보였고, 오래 보았다.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생을 네 안에 살아, 갈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