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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Dec 04. 2016

바람결에도 네 목소리가 들려

10월의 수요일 : 목소리



10.05.


날 부르는 네 목소리가 바람처럼 불어왔어.

내 곁에 머물던 바람이 공기 중에 흩어지고 나면, 그게 아쉬워서 다시금 불러 세우곤 했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날 불었던 바람의 결이 느껴져. 지금 와 생각해보니 흩어지는 바람은 그대로 보내줘야 했었나 봐. 바람이 도통 불지 않는 요즘, 내 주변 공기의 푸석거림이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렵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




10.12.


잊겠다는 생각을 매일 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라는 단어를 손바닥에 적어 놓는 일이 습관이 되려 해.


그러다 가끔 네 목소리가 어땠는지 생각조차 안 날 때, 다행이다 싶어.

다행이다 싶은데, 그 생각을 붙잡고 있다가 또다시 네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돼.




10.19.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었건
잘 가, 어제의 나

맑게 갠 하늘에 비행기구름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

잃어버린 건 없을까
잘 가, 어제의 나

눈을 감고 불러보네
그 시절의 그대를 만나고 싶어서

그대여 나는 아직 기억해
그대여 나는 잊지 않을 거야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돌아보지만 그대는 없어

그대여 나는 아직 기억해
그대여 나는 잊지 않을 거야

그대여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에도
그대만은 나를 믿어주었지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었건
헬로 어게인, 내일의 나

놓아버릴 수 없으니까

한 걸음만 앞으로
한 걸음만 앞으로
또 한 걸음만 앞으로

- 하나레구미, 심호흡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OST)


적막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사무실의 적막한 분위기가 주는 적당한 편안함을 느끼고자 노력했고, 마음의 적막함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조용히 들려오는 음악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이 들리는 곳을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OST가 들려오는 곳에 한 사람이 있었다. 한 공간 안에 같은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여러 사람이 한 공간 안에 있다. 하나의 일을 같이 하면서도 각자가 견뎌내야만 하는 무게는 대다수 그 자신만이 체감할 수 있기에 힘듦을 토로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그 무게를 나눠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은 생각보다 잔혹하고, 다수에 의해 당연하다고 평가받는 것이 지배한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관점에서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와 그것으로 인한 고통은 당연한 것이다. 돈이라는 대가를 받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무게가 더해질수록 잦아들 개인의 외로움까지 모른 척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니까.


가끔 사무실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 앞모습, 옆모습을 본다.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을 한참 바라본다. 곁에 다가가지도 못할 만큼 바쁜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으로만 신경 쓰는 날들이 늘어간다. 요즘, 괜찮아요?




10.26.


1.

하늘을 바라보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울컥했다.

단지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날 그렇게 만드는 이가 있다.


'나 어디 안가'라고 말하던 이가 생각났고,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요즘 들어 혼자 있는 순간에 그의 목소리를 자주 떠올리게 되고, 홀로 울컥하는 일이 많아졌다.


2.

오늘은 날 부르던 네 목소리가 없는 날이야. 그런 날이 늘어가.

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데, 내가 변하고 있는 걸까.


그런 날이 늘어가.

떠나가지도 못하고 다가가지도 못하고, 종종거리는 마음을 들고 같은 자리에 서있는 날이야.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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