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금요일 : 이사
마음 안에 늘어놓았던 사소한 추억들을 미리 정리한다. 떠나는 이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드는 아쉬움이 매번 처음처럼 두렵다.
10년을 넘는 시간 동안 한 집에서 살았다. 올해는 이사를 가기로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곧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떠나야 할 땐 떠나야 한다. 알면서도 드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건, 내가 떠나온 자리는 내가 없어도 남아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인데 그 마저도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물이 흘러가듯이, 그를 보내주어야 한다.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 한다.
나와 연결된 무수히 많은 것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간혹 홀로 들고 있는 짐이 무거워 남모를 투정을 허공에 부리기도 한다. 사소한 것들에도 의미 부여하며 행복하게 살자는 다짐은 동시에 사소한 것들을 홀로 붙잡고 있는 외로움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무엇도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미리 기록으로 남길 것은 남겨두고 버릴 것은 버릴 수 있도록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잘 못 버리는 나라도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무엇이라도 놓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 고마움과 감사함은 그리움의 방법론이다. 고맙고 감사한 기억이 있어야 그리움도 생기는 거다.
-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中
그녀는 우리의 현재 모습을 결정하는 게 개개인의 선택인지 아니면 환경인지. 새미는 어쩌다 모든 일에 관여하는 성격이 되었는지 자문해본다. 뛰어내리는 성격으로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성격으로 사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최대한 값진 삶이 될지 궁금해한다.
- 프레드릭 베크만, '브릿마리 여기 있다' 中
1.
질척거리지 말고, 돌아서야 할 땐 제발 그러고 말자. 날 좋은데 웬 청승이야.
2.
(그럴수록) 고맙고 그리울 네 마음.
모든 것이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데 오로지 겁을 먹은 탓에 모든 것을 놓쳐버린다.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中
불가피한 환경의 변화로 인한 나이자 우리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사실은 위로이기보다 불안 쪽에 더 가깝다. 미칠 듯이 행복한 현재가 사라질까 두려워 내일을 거부하는 게 낫겠다는 이 극단의 마음이, 지금 이 순간이다. 행복과 불안의 이어달리기.
인생에도 수업료가 있다.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고 기약이 없는 인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 이애경, '나를 어디에 두고 온 걸까' 中
흔하디 흔한 이사가, 이별이 여전히 쉽지 않다. 이사는 이사고 나는 같은 자리를 굳건히 혹은 미련하게 지키고 있다. 기약 없는 제자리걸음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 바랄 수 있는 게 있기는 한 것인지 스스로를 향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원을 믿다가도 변화의 선두에 서있는 나를 믿지 않는 변덕스러운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