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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lar Oct 24. 2021

신입생 단톡방에 벌어진 대환장 파티

선생님도 사람이야, 쫄지 마!

우리 학교는 영어교육을 공부하는 사이버대학원이다.

학교 특성상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이 많고 특히, 현직 영어강사나 교사인 학생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나는 그 사실을 합격 후에야 알았다.


코로나 시국에 오프라인 오리엔테이션이나 입학식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우리 동기들끼리의 첫 소통은 단톡방에서 이뤄졌다.


반갑습니다!

함께 잘해봐요.


적당한 거리를 둔 인사말로 시작된 단톡방 대화는 시간이 흐르며 슬슬 무르익었고 서로의 신상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이들 대다수가 교사거나 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는 OO지역 사는데 혹시 같은 지역 분 계신가요?

대학 졸업한 지 NN 년... 저처럼 늦게 학교 오신 분도 계신지 궁금해요.

학원을 운영중인데 유튜브 채널을 열까 해요.


50여 명이 주고받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나만 만학도가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고 각양각색 동기들의 거주지나 직업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했다. 특히, 교육이라곤 대학시절 과외교사로 일했던 소박한 경력뿐인 나는 현직 교사와 강사가 나의 학교 동기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교사나 강사 동기들은 같은 말을 해도 어쩐지 매너가 좋고 똑 부러지는 느낌을 주었다. 이런 느낌에는 아무래도 내 성장과정의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어보면 뭐든지 다 아는 척척박사,  세상 이치를 나에게 일러주는 등대, 잘잘못을 가려주고 그에 따른 상벌을 내리던 내 작은 세상의 심판자.


내게 교사와 강사란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런 개념을 가지게 된 데는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정말 좋은 스승을 많이 만난 덕이 컸다.

(물론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예외의 인물도 있었지만.)

거기에다 아버지가 무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강조하며 나와 동생을 키우신 것도, 교육인을 내 머릿속에서 거의 성인의 반열에 올려두고 살게 되는 데 한몫을 했다.

(물론 그동안 살면서 세상 일이 꼭 격언이나 성현의 말씀처럼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걸 배우긴 했지만.)


삶에서 만난 거의 모든 스승을 경외하며 살아온 나. 그렇기에 현직 교, 강사를 무려 학교 동기로 두고 함께 공부하게 되는 일은 참 설레는 일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매우 주눅 드는 일이기도 했다. 신입생 단톡방이 없었다면, 첫 수강신청을 앞두고 그 단톡방이 시끌시끌해지지 않았다면, 아마 난 아직까지 '내가 무슨 수로 선생님들보다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겠어'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한 학기에 몇 학점 듣는 게 좋나요?

모바일 홈페이지에서도 수강신청이나 강의 듣기를 할 수 있나요?


난 한창 '파릇파릇한 신입생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던지라 이런 질문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이런 게 바로 어수룩하면서도 귀여운 신입생만의 매력 아니겠어?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단톡방에 질문의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총 몇 학점을 들어야 졸업할 수 있나요?

조기졸업은 언제 신청하나요?

XXX과목은 이번 학기에 개설이 안 되었나요?


물론 꼭 알아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사항들이었다. 그래서 모두, 학교 홈페이지에 안내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평소에 스스로 ADHD가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덤벙대는 나조차 이미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본,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이 단톡방에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의아했다.  


왜 이걸 홈페이지에서 직접 찾아보지 않고 여기서 다 해결하려는 거지?

혹시라도 학부 신입생이면 모를까, 대학원인데.

뭣보다 이 사람들 대부분이 선생님인걸.

대체 왜, 선생님들이 이런 것도 모르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나는 깨달았다.


선생님들도 모르는 게 있고 잘 못하는 게 있구나.

선생님들도 남들의 도움을 받고 사는구나, 때로는.


동기들의 질문이 내게 환장할 정도의 답답함을 유발한 건, 애초에 내가 '선생님들은 그런 거 다 알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탓이 컸다. '선생님도 화장실에 가요?'라는 어린아이 같은 질문을 할 지경의 좁은 시야를 가지고 이 나이까지 살아온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라는 직업에 대한 얼마간의 환상이 내 깊은 곳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거다.


지난 몇 년간 언론 쪽에서 일하며 나는 학교나 학원에서 벌어진 사건사고, '교육자'가 연루된 사건사고 소식에는 대중이 유난히 격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잘못한 일에도 교사 탓, 제도가 허술해 생긴 문제에도 교사 탓, 교육 현장과 관련 없는 개인사에도 사건 당사자의 직업이 교사라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꽂히는 게 다반사다.

그런 현상이 나는 참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나 자신도 교육자에 대한 비현실적이며 단편적인 이미지를 품고, 그걸 기준으로 이들을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다. 누군가에 대해 품은 지나친 기대와 환상은 때로 그에 대한 실망, 더 나아가 분노까지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으며 지금도 중요한 학사일정이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단톡방의 질문 대잔치. 그 덕에 난 내 안의 편견과 폭력적 시선을 새삼 깨닫고 반성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동기들을 쓸데없이 우러러보며 쪼그라들던 내 자존감을, 그 단톡방이 살려주기도 했다. 선생님도 모든 걸 알거나 다 잘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직업이 다를 뿐, 함께 출발선에 선 사람들이니까. 어쩌면 내가, 교사나 강사인 학우님보다 이번 시험을 더 잘 볼 수도 있는 일이니까. 쫄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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