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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lar Oct 24. 2021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면서요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우스갯소리 중에 요즘 나의 마음을 후벼 파는 게 있는데, 바로 이 말이다.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한 선택으로 대학원이라는 델 왔다. 공부라는 게 마냥 편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오랜만에, 그것도 스스로 필요를 느껴서 하게 된 이 공부가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철없는 기대는 입학하자마자 깨져버렸다.


사이버대학원은 매주 월요일 자정, 일주일치 강의가 업로드된다. 학기가 시작되면 개강일 0시부터 다짜고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였다. 나의 대학원 첫 개강일 0시, 라디오 시보가 울리자마자 후다닥 들어가 본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 학습 전용 전자 관리 시스템으로 온라인과 모바일 등에서 사용 가능하다)에는 정말로, 강의 목록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 난 정말 설렜다.


아, 내가 정말 학생이 되었구나!

열심히 한번 해보자! 해보고 싶었던 공부잖아!


하지만 설렘은 설렘이고 당장은 월요일 새벽이니... 난 일단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월요일이라 바빠서 LMS를 들여다보지 못했고, 화요일에는 아직 화요일이니 여유가 있어서 수업 듣기를 미뤘다. 수요일에는 수요일의 사연이, 목요일에는 목요일 나름의 핑계가 생겼다. 그런 식으로 주말이 닥쳤고, 더 이상 미루면 출석 점수에 문제가 생긴다는 압박감이 나의 주말을 짓누르기 시작할 때쯤 처음으로 LMS에 접속해 강의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0분 후, 나는 절규했다.


맞다, 나 공부 싫어했었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제법 우등생 그룹에 속해서 보냈고 특목고를 나와 이른바 명문대라는 곳에 들어갔지만, 어린시절 나는 우등생이었지 모범생은 아니었다.

우등생은 결과에 주목해서 불러주는 이름, 모범생은 과정을 바라보며 붙여주는 칭송일 것이다.

꽤나 노력을 하기는 했고, 성공적인 입시결과를 만들어 냈고, 그래서 기특하다는 어른들의 칭찬을 받기는 했지만 그건 내가 학교에서 만난 훌륭한 스승님들, 체계적인 강남의 사교육,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노심초사 덕이 팔할이었다.


정말이지 난 자력으로는 남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성격을 타고났다.

아이템풀도, 재능수학도, 빨간펜 학습지도, 그 어떤 것 하나 제때 풀어본 적이 없었다.

학원 숙제는 학원에 가는 차 안에서 흔들리는 글씨로 겨우겨우 해 냈던 게 부지기수.

그럼 그 공부를 했어야 할 시간에 내가 작정하고 놀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난 그냥 '거기에 있는' 그런 아이였다. 해야 할 것을 쌓아놓고 그저 바라보며 미적대다가 끝내 침대나 방바닥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그러니 부모님은 허구한 날 터지는 속을 부여잡은 채 밀린 학습지로 내 등짝을 때리거나 숙제가 제 때 돼 있는지 점검하셔야 했다.


이런 내가 대학에 가서 자유를 얻었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큼 하는가도 자유였지만 공부를 아예 안 하는 것도 나의 자유였다.

그래서, 공부를 별로 안 했다!

취업을 막연히 걱정하며 학점 방어를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공부를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강 과목은 몇 되지 않는다.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중간고사를 보고 기말고사를 봤을 뿐, 진짜 공부는 아니었다.


이렇듯 대학교 때 공부라는 걸 얼렁뚱땅 손에서 놓아버렸고 사회에 나와서는 더더욱 학습을 위해 책상 앞에 앉을 일이 없으니, 공부를 안 한 세월이 약 15년에서 20년인 셈. 공부라는 행위의 얄궂은 면은, 인이 박여야 할 수 있다는 거다. 고등학교 때 입시학원 선생님이 했던 '공부는 머리 이전에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나는 마흔 살이 되어 다시 뼈저리게 깨달았다.


책상 앞에 진득하게 붙어 앉을 수 있을 때까지, 강의 영상을 틀어놓고서도 다른 짓을 안 하고 정말 강의에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 내 머리가 강의를 '소리'가 아니라 '지식'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데까지 최소 한 달은 걸린 것 같다. 이제 좀 공부라는 게 손에 잡히나 싶고 책상 앞에 앉는 게 익숙해졌나 싶어질 때쯤, 이번에는 사십 년 묵어 녹슨 허리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고 결국 난 한의원과 마사지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내가 대학교 때 '공부 안 하는 죄'를 지었다는 걸, 그래서 오늘날 대학원에서 노화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공부하는 벌을 받는다는 걸 나는 지금도 매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해볼 걸. 조금만 더 진득하게 공부할 걸. 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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