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희 선생님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첫날 교실에 들어가자 담임선생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이랬다.
“나는 1년 동안 여러분의 일기를 매일 검사하겠습니다. 다 쓴 일기장은 묶어 두고, 1년 뒤 가장 많이 묶은 학생에게 큰 선물을 주겠습니다.”
처음에는 두세 줄 쓰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매일 빨간 펜으로 내 글 밑에 답을 남겨주셨다.
그 글씨가 어느 순간부터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증조할아버지 제사였다. 고모할머니, 작은엄마, 친척들이 많이 오셨다.”
이렇게 적으면 선생님은 질문을 달아주셨다.
“고모할머니는 몇 분이시니?”
“맛있는 음식은 뭐였니?”
“너도 절했니?”
그 질문 밑에 나는 또 답을 달았다.
일기장은 마치 작은 편지지가 되어, 선생님과 내가 하루를 공유하는 통로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벌써 두 권째 일기장을 묶었다며 칭찬을 받았다.
그 일기장은 선물처럼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 순간 내 마음에도 불이 붙었다.
두세 줄로 끝내던 일기를 길게, 또 길게 늘여 쓰기 시작했다.
나도 빨리 두 권, 세 권을 묶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 욕심은 단순한 칭찬과 선물에 대한 기대에서 시작되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글쓰기 습관으로 이어졌다.
작은 경쟁심과 선생님의 빨간 펜, 두 가지가 나를 글로 이끈 씨앗이었다.
일기 쓰기는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슬픔도, 기쁨도, 화남도 모두 적었다.
하지만 언젠가 이사를 하면서, 소중히 모아 두었던 일기장 박스만 사라져 버렸다.
쓰레기 더미에 묻힌 것인지, 오랫동안 마음이 허했다.
마치 내 인생의 일부가 송두리째 빼앗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감사일기와 하루의 할 일을 적는 작은 메모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두툼한 노트는 아니지만, 오늘을 기록한다는 마음만은 여전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수첩을 펼쳐 오늘 해야 할 일을 적는다.
1. 방 정리
2. 옷장 정리
3. ……
이 메모 습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항상 기억할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려주신 고명희 선생님을.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