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흑인 교회에서 들은 첫 찬양의 전율

낯선 땅에서 울려 퍼진 선율

by 김세원

개학까지는 아직 3주 정도 남아 있을 때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이메일을 확인하던 중, 학교 계정으로부터 온 메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ESL 레벨 테스트 일정 안내였다. ESL은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의 줄임말로,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학생들이 듣는 수업이다. 정규 수업에 들어가기 전, 유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영어 실력을 다져야 했다. 그 반을 정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노트북으로 학교 웹사이트를 띄워두고, 핸드폰으로 이메일에 적힌 안내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예약을 진행했다. 신청이 조금 늦어서였는지, 테스트는 다음 주 월요일로 배정되었다.
시험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도니, 이상하게도 나를 위축시켰다. 아무리 부담 갖지 말라고 해도,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월요일에 가게 될 캠퍼스 지도를 들여다보고, 구글 맵으로 거리도 재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에, 제이슨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유석아, 뭐해? 혹시 할 일 없으면 나랑 가스펠 콰이어 같이 해볼래? 지금 한 자리 비었는데, 대체할 사람 찾고 있어.”

형의 설명에 따르면, 내가 매주 주일마다 다니는 한인 교회의 예배당은 원래 흑인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공간이었다고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인 수가 늘자, 흑인 교회 측에서는 더 큰 예배당을 새로 짓기로 결정했고, 기존 건물은 다른 커뮤니티에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해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다른 교파의 미국 교인들, 스페니시 교인들, 한인 교인들이 같은 공간을 시간대별로 나누어 사용하고, 정기적으로는 새로 지은 예배당에서 연합 예배도 드리고, 콰이어로 함께 찬양 준비도 한다고 하였다.

돌이켜보면, 교회에 일찍 도착했을 때 미국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고, 늦게 도착했을 땐 스페니시 교인들이 분주히 예배를 준비하는 장면을 스쳐 지나친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안에는 이런 배경이 담긴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마침 별다른 일정도 없었고, 노래 부르는 것도 원래 좋아했기에,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는 기대에 망설임 없이 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형의 차를 타고 도심 외곽을 향해 달렸다.
나도 외곽에 살고 있지만, 그날 우리가 향한 곳은 그보다 훨씬 더 멀고 한적한 곳이었다.
밭이 펼쳐지고, 자유롭게 뛰노는 말과 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평화로운 풍경 속에 교회가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지평선 끝에서 마치 대형 체육관처럼 생긴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는 넓디넓은 주차장이 펼쳐져 있었고, 그 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감에 잠시 말을 잃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는 상상 이상이었다.

순간 세종문화회관이 떠오를 만큼, 웬만한 공연장보다 훨씬 넓은 예배당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천장은 3층 높이까지 시원하게 뚫려 있었고, 양옆 벽면에는 콘서트장에서나 볼 법한 초대형 스피커들이 버티듯 자리하고 있었다. 예배당이라는 단어보다 공연장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나는 놀라는 마음에 형에게 물어보았다.

“형, 이 사람들 전부 다 같이 노래하는 거야?”
“응. 찬양 인도자 한 명 앞세우고 네 곡 같이 부르고, 마지막엔 특송 한 곡 더 해.”
얼마 후, 키가 크고 체격도 다부진 흑인 인도자가 무대로 올라섰고, 짧은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파트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Anywhere is fine.” (아무 데나 괜찮아요) 라고 했는데, 그 말 한마디로 테너 파트가 되었다.

그때까진 그냥 평범한 연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악기팀의 사운드 체크가 시작되자,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보통 교회 찬양팀이라고 하면 키보드, 드럼, 기타 정도일 줄 알았는데,
여기엔 트럼펫, 플루트, 바이올린처럼 클래식한 악기들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즉흥적으로 맞춰보는 그들의 연주는 가히 예술이었다.
그들의 실력에 감탄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악기팀 대부분이 줄리아드, 커티스, 버클리 같은 음악 명문대 출신들이었고, 지금도 심포니나 유명 밴드에 소속된 현역 연주자들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그 처음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인도자는 각 파트를 무대 위로 정렬시켰고, 피아노 앞에 앉아 음 하나를 눌렀다.
“Bass, B. Tenor, D. Alto, F. Soprano, A.”

(베이스는 B, 테너는 D, 알토는 F, 소프라노는 A)
정확하게 각 파트의 음을 지정하더니, 손짓 하나로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100명이 넘는 보컬이 일제히 각자의 음을 터뜨렸다.
내가 내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마치 거대한 폭포 소리에 내 목소리가 삼켜지는 듯했지만,
그 압도적인 소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흘러가는 순간, 전율이 온몸을 감쌌다.

‘이게 바로 흑인 교회 음악이구나…’

그 순간, 나는 왜 그들이 찬양할 때 눈을 감고, 몸을 흔들고, 때로는 울기까지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들의 악기와 찬양 소리는 잘 부르는 노래라기보다, 말 그대로 기도에 가까웠다. 음 하나하나에 감정이 실려 있었고, 리듬은 정확하기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제이슨 형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는, 이 찬양의 뿌리는 미국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삶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악기도, 언어도, 자유도 빼앗긴 상황에서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이 바로 리듬과 목소리였다고. 농장이나 철도 공사 같은 강제 노동 속에서 서로의 박자를 맞추며 버티기 위해 불렀던 노래들이 이어져 내려왔고, 성경 이야기를 빌려 찬양을 부르긴 했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찬송을 넘어 고통과 희망, 탈출과 자유에 대한 마음이 함께 담겨 담겨 있었다. 드럼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던 상황에서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몸을 흔들며 리듬을 이어갔고, 그렇게 몸 자체가 악기가 되면서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소리가 그들의 찬양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내가 들었던 소리는 정제된 음악이라기보다, 오래 쌓여온 시간과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연습 막바지, 특송 순서가 되었다.

“For this song, we’ll start with a solo in the first verse, and then everyone will join in from the second verse.” (이번 곡은 1절은 솔로, 2절부터 다 같이 들어갈게요.)
무대에 오른 건,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흑인 아이였다.
마이크 스텐드 보다 키가 작아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Thank you…”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저 한 소절쯤 귀엽게 부르고 끝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자, 아이는 고개를 들기도 전에 어깨부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이는 곧바로 소리를 뱉어냈다.
“워어어우~ 예예에~”

나는 얼어붙었다.
…뭐지,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음이 꺾였다. 감정이 실렸다. 리듬도 완벽했다.
그건 절대 귀여운 한 소절이 아니었다.

R&B 보컬처럼 애드리브를 시작한 아이는, 무대 위에서 혼신의 감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귀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감탄만이 남았다.
‘저 조그마한 몸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오는 거지?’

그날 이후로 나는 평범한 노래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노래든 듣기만 하면, 자꾸 그날 특송을 했던 아이처럼 음을 꺾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샤워를 하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나도 모르게 소리가 먼저 꺾여 나왔다. 스스로도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날의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그 강렬했던 순간은 여전히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연습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이 지난 뒤 본 예배가 시작되자, 찬양팀과 보컬팀은 연습 때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찬양하고 있었다. 같은 노래였지만, 그 안에 담긴 분위기는 분명 달랐다. 각자의 마음에 남아 있던 말씀 때문이었을지도, 무대에 선다는 긴장감이 감정을 조금씩 밀어 올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분명한 건, 그 찬양 속에는 연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설교에 들어가기 전, 갑자기 목사님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Since we have some people joining us for the first time today, let’s each take a selfie with five people we haven’t met before!”

(오늘 처음 함께하는 분들도 계시니까, 우리 각자 아직 안 친해진 사람 다섯 명이랑 셀카 한 장씩 찍어보아요!)

처음엔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곧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마주친 눈빛, 조심스레 들린 핸드폰, 그리고 웃음이 섞인 표정으로 함께 셀카를 찍었다. 고작 셀카 한 장이, 낯선 사람들 사이의 어색함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나 역시 낯선 얼굴들과 눈을 마주치고 어색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이,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리고 이어진 설교 시간.
무대 위로 목사님 세 분이 함께 올라왔다.
미국 목사님이 영어로 설교를 시작하면, 곧이어 스페니시 목사님이 스페인어로 자연스럽게 이어받았고,
그 뒤를 한국 목사님이 또박또박 한국어로 해석하며 이었다.

처음엔 조금 정신없게 느껴졌지만,
서로 다른 언어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날의 예배는 단순한 종교 의식을 넘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따뜻하고도 뜻깊은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보다도 내 안에 남은 여운이 더 길고 더 깊었다.

낯선 땅에서의 삶은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오늘 같은 하루가 있었다는 사실이 내일을 조금 덜 두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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