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의 낯선 냄새와 질문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수업 날이다.
아침부터 옷장을 열어 몇 벌이나 꺼내 입어보다가 결국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꾸안꾸 스타일로 골랐다.
너무 튀지도, 너무 심심하지도 않게. 첫인상이니까, 적당히 자연스럽게.
며칠 전 Amazon limited deal(아마존 한정 특가)로 득템 한 노트북도 배터리를 확인하고 가방에 조심스레 넣었다. 설렘 반, 긴장 반.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낯설지만 익숙한 떨림이 느껴졌다.
이번 학기 수업은 총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월·수·금에는 읽기, 쓰기, 문법 수업이 각각 50분씩 이어지고, 화·목에는 두 시간짜리 듣기와 말하기 수업이 진행된다.
테스트 결과, 듣기와 말하기는 레벨 3, 읽기·쓰기·문법은 레벨 4 수업으로 배정받았다.
학교 규정에 따르면 모든 ESL 과목은 최종 성적이 C 이상, 즉 70퍼센트만 넘기면 이수로 인정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간다면 다음 학기에는 드디어 대학 정규 수업을, 현지 학생들과 나란히 듣게 될 것이다. 물론 남은 ESL 수업과 병행하겠지만, 대학생이면서도 대학생 같지 않은 이 어정쩡한 기분은 그때쯤이면 지금보단 조금 덜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캠퍼스를 걷다 보니, 어느새 교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에 스스로도 놀라며, 나는 문 앞에 살짝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손잡이를 잡았다.
제일 먼저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나를 강하게 잡아끈 건 사람도 풍경도 아닌 냄새였다.
각 나라의 향신료와 향수가 한꺼번에 몰려와,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강하고 낯선 냄새가 나를 정면에서 맞이했다. 모로코의 시나몬과 민트, 터키의 장미수, 방콕의 라임잎, 인도의 커민 향이 뒤섞여 향신료의 합창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어딘가 중동 바자르의 붉은 천 사이에 스며들어 있을 것 같은 장미 머스크 향까지.
그 냄새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내 코를 파고들었고,
나는 한 번 들이쉰 숨에 전 세계를 다녀온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 냄새는 꽤 당황스러웠다.
향기라고 하기엔 강했고, 불쾌하다고 하기엔 이상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냄새였다.
아마 다들 나처럼 첫 수업의 설렘을 안고, 자기만의 문화가 담긴 방식으로 정성껏 자신을 꾸며온 것 같았다.
교실 안에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온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나는 그중 몇몇이 한국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눈이 마주치자, 그들 역시 나를 알아본 듯 서둘러 책장을 넘기거나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함을 피해보려 했다.
대부분은 앞자리를 피해 조심스레 뒤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맨 앞줄만 덩그러니 텅 비어 있는 모습이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그 순간, 오기가 치밀었다.
이 수업에서 가르치는 것이라면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일부러 맨 앞줄 정중앙쯤 되는 자리를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
자리에 앉아 조용히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칠판과 다섯 명씩 앉을 수 있는 긴 책상들이 여덟 줄 정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전체적인 구조만 보면 어딘가 한국의 영어학원과도 닮아 있었다.
수업 시작 10분 전쯤, 내 옆에는 중동계로 보이는 학생이 조용히 와서 앉았다.
그 뒤로는 짙은 향신료 냄새를 풍기며 히잡을 두른 여성이 자리에 앉았다.
얼굴만 살짝 드러나 있었는데, 그 위로 진하게 그어진 아이라인이 눈매를 또렷하게 감싸고 있었다.
시선을 단번에 끄는 강렬함이었다.
수업 시작 5분 전쯤, 한쪽 어깨에 백팩을 걸친 Dr. Nick이 환한 미소와 특유의 푸근한 인상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Welcome to my class!”
(제 수업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의 첫인사 한마디에 교실 안의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게 느껴졌다.
학생들은 저마다 반가운 표정과 말투로, 각자 나라의 억양이 묻어나는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Dr. Nick은 먼저 자신의 이름과 국적을 소개한 뒤, 짧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세 명씩 조를 짜서 서로의 이름을 소개하고, 국적이나 나이를 추측해 보는 게임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무렵, 조 친구를 대신 소개하는 시간을 갖자고 덧붙였다.
첫 수업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부담 없이 서로를 알아가는 방식 같아서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옆에 앉은 중동계로 보이는 남학생, 그리고 히잡을 쓴 여성과 같은 조가 되었다.
다들 조금은 어색했는지 멋쩍은 웃음만 지었고,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음속에 어색함이 살짝 맴돌았지만, 그래도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인답게 당당하게 말했다.
“Let me introduce myself. My name is Yoo Seok.”
(먼저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유석이라고 합니다.)
내 이름을 두 번이나 되묻는 표정에서 살짝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지만,
크리스와 제이크가 평소에 “You suck”이라고 내 이름 가지고 매일같이 놀려댔던 터라,
누가 내 이름 듣고 당황하는 거쯤은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이어 중동계 남학생은 자기 이름이 아메드라고 했고, 히잡을 쓴 여학생은 파티마라고 이름을 소개했다.
아메드는 어색한 기류가 다시 감도는 게 싫었던 건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Are you from China? Ni hao!”
(중국에서 오셨어요? 니하오!)
그 말에 묘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딱히 나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은, 그냥 알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짧게 “Korea”라고만 덧붙였다.
그랬더니 이번엔 파티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North Korea? Or South Korea?”
(북한이에요? 아니면 남한이에요?)
순간 몸이 살짝 경직됐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이유 모를 긴장감이 스며들어 몸이 뻣뻣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눈빛엔 전혀 악의가 없었다.
그냥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쿨한 척, South Korea라고 하지 않고 Republic of Korea라고 말했다.
표정 굳은 걸 들킬까 봐 오히려 더 장난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땐 셜록 홈즈라도 된 것처럼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그럴싸한 표정을 한껏 지어가며 아메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I think you're from Pakistan.”
(당신은 파키스탄 출신인 것 같아요.)
아메드는 순간 멈칫했다. 아주 짧은, 눈 깜빡할 사이였지만 당황한 기색이 얼굴을 스쳤고,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아메드는 자신은 터키인이라고 소개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크리스랑 제이크가 “첫 수업에 친구 사귀었냐?”라고 묻길래
나는 아메드, 파티마랑 나눴던 대화를 그대로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둘 다 말 끝나기도 전에 숨 넘어가게 웃어댔다.
제이크는 물을 뿜을 뻔했고, 크리스는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들은 이런 식의 대화는 미국에서는 민족 외모를 조롱하거나,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전혀 그런 의도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건넸다.
그 순간엔 정말 아무 거리낌도 없었다.
히잡을 쓴 파티마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었다.
처음엔 아이라인 탓인지 조금 매섭고 차가운 인상으로 보였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말도 먼저 잘 거는 꽤나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첫인상과는 다른 반전 매력에 나는 조금 놀랐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파티마가 갑자기 우리에게 셀카를 제안했을 때였다.
“I want to remember my first-class friends, so let's take a picture together!”
(내 첫 수업 친구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우리 같이 사진 찍자!)
나와 아메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파티마가 찍은 셀카에는 우리 둘만 있었다.
처음엔 잘못 찍은 줄 알고 다시 같이 찍자고 말했을 때, 파티마는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자신은 결혼한 사람이고, 다른 남성과 함께 사진을 찍는 건 금지라고.
만약 남편이 보면 혼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바로 다른 나라 문화 차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조금씩 서로에게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고
소개 발표도 자연스럽게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수업으로 이동하려던 참에 알게 된 건, 파티마와 아메드와 이번 학기 수강 과목과 시간이 같다는 거였다. 결국 남은 수업도 같이 듣게 되었고, 오늘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번호도 주고받았다. 학교에서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내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